[정진영 칼럼]  올 한 해 행복하셨습니까 기사의 사진
행복은 주관적 안녕감이다. 내가 편안하다고 느끼며 만족하면 그게 행복이다. 선조들이 안빈낙도(安貧樂道)나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지향했던 것도 이런 까닭이다.

행복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개인의 정서적 수준을 넘어 다양한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회적 결과물로 인식된다. 행복과 사회적 요인의 상관성은 지난 10일 창간 27주년을 맞은 국민일보 국민의식 여론조사 결과 그대로 드러났다. 응답자 10명 중 3명 정도만이 행복하다고 말했으며 그 이면에는 돈에 대한 맹신, 배려·신뢰의 실종, 관계의 단절이 배어 있었다. 대한민국은 행복하지 않은 나라라는 지표가 다층적으로 확인됐다.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의 행복지수가 하위권임은 여러 곳에서 발표됐다. 유엔의 ‘2015년 세계행복보고서’ 47위, 갤럽의 2014년 ‘웰빙지수’ 117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2013년 더 나은 삶의 지수(Your Better Life Index)’ 34개 회원국 중 27위 등이다. 심각한 것은 갈수록 순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4351억 달러로 세계 11위, 1인당 GDP는 2만8338달러로 28위의 경제 강국이다.

소득이 많아짐에도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노스웨스트대 교수 필릭 브릭먼은 ‘쾌락의 쳇바퀴’ 이론을 들었다. 돈이 많아도 행복 감정 자체는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쳇바퀴를 돌리듯 더 많은 것을 갈망한다는 논리다. 증가하는 소득이 경제적 욕구는 비례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으나 행복감의 순증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는 1인당 GDP가 2만 달러 넘으면 그 이상의 수입은 행복과 큰 연관이 없다는 ‘만족점(Satiation point)’ 논거를 제시했고, 미 남가주대 교수 리처드 이스털린은 부탄, 방글라데시 같은 빈곤국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선진국보다 높은 이유가 ‘소득 증가와 행복 증진은 무관하다는 방증’이라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주장했다.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감은 커진다’는 저스틴 울퍼스 미시간대 교수 같은 석학들의 반박도 적지 않다. 소득이 많아지면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고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가 생기면서 행복감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통계를 중시하는 계량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이 이론에 동조하는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복에는 소득 절대값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한민국처럼 돈의 가치가 절대적인 나라에서는 반드시 ‘좋은 삶’에 대한 각성이 확산돼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이 꼽는 좋은 삶의 요소는 공동체 의식, 일과 삶의 균형, 안전, 환경, 건강, 배려, 소수의견 및 다양성 인정 등이다. 가난하지만 늘 행복지수 최상위국에 속하는 부탄이 추구하는 국내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범주에 대체로 포함되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삶의 질을 재는 새로운 척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비용으로 계측할 수 없는 비시장적 가치나 도덕적 규범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공동선의 값을 높게 매기는데 익숙해야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행복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될 때가 됐다. 무엇을 위한 소득이고, 성장인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행복 추구는 더 절실하다. 내년 이맘때 본보 창간 28주년 기념 여론조사에서의 국민 행복 체감도는 어떨까.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