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중졸 출신에 대기업 임원 승진한 여걸 ‘김남옥’ 한화손해보험 강남본부장 상무 기사의 사진
중졸 학력으로 국내 재벌그룹 계열사 상무가 된 한화손해보험 김남옥 강남지역본부장은 후배들에게 “절대 미리 한계를 설정해서는 안 되며 간절함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이른바 ‘가방끈’은 막강한 사회적 자산이다. 탈(脫)스펙 현상이 확산되는 것과 무관하게 학력과 학벌은 여전히 중요한 관계망의 하나다.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고 하지만 대학졸업장은 사회진출 과정에서 꼭 필요한 발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중졸 학력이 전부인 여성이 국내 재벌그룹 계열사의 상무가 됐다. 믿기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학이라도 나왔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지난 6일 한화그룹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한화손해보험 김남옥(60) 강남지역본부장이 주인공이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16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지하철 양재역 부근 한화손보빌딩 5층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방에는 축하 난들이 꽤 많았다. 화분과 꽃바구니 등 수십개가 배달됐는데 나눠주고 남은 게 이 정도라고 했다. 방 한쪽 진열대에는 여러 방면에서 활동한 김 상무의 이력이 담긴 기념패 등이 놓여 있었다.

-축하 인사를 받느라 바빴겠다. 누가 가장 기뻐했나.

“당연히 가족들이다. 그러나 동료들도 너무 많이 축하해줘 정말 고마웠다. 이전에 근무했던 부산 및 경인지역본부 식구들까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물론 여직원 후배들의 반응이 남자들보다 더 열렬했다. 같이 일해 보고 싶다는 여성 후배도 적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에 나와 관련된 보도가 많이 나 얼떨떨하다.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

-바로 묻겠다. 중졸이 최종 학력 맞나.

“(좀 망설인 후) 맞다. 1970년 경남 하동의 양보중학교를 나왔다. 그게 전부다. 5남 1녀의 외동딸이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공부를 많이 못했다. 오빠 한 분도 중학교만 나온 후 검정고시를 봤다. 60∼70년대는 시골에서 고교, 대학 진학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볼 수도 있지 않았나. 왜 더 이상 공부를 안 했나.

“난들 왜 고민이 없었겠나.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수학교사인 남동생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결론은 잘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하자는 것이었다. 늦은 나이에 고교 졸업장을 따고 나중에 대학을 졸업한다 하더라도 내 일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체면치레용이어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내이자 엄마, 종갓집 맏며느리, 한화손보 식구로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동료들은 중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낮은 학력 때문에 창피한 적도 있었을 텐데.

“아주 가까운 직원들 말고는 잘 몰랐다. 그러다가 작년에 상무보가 되면서 공개적으로 알려졌다. 어떤 친구는 ‘얼마나 가슴 아프시겠느냐’며 엉엉 울더라. 지금도 잊지 못할 일이 있다. 2003년쯤이다. 우수 보험설계사에게 주는 ‘연도대상’을 받아 해외여행을 가게 됐다. 아마 비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외부에서 전화가 와 이것저것 묻더니 최종 학력을 질문하더라. 순간 갑자기 부끄러워 작은 소리로 ‘중졸’이라고 하는 바람에 저쪽에서 ‘안 들린다’며 몇 번이나 되묻다가 사실을 확인하고는 당혹해 하더라. 정말 낯이 화끈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일이 전혀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중졸 학력이 회사 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학력을 따지는 곳 같았으면 처음부터 나를 뽑지 않았을 것이다. 중졸을 누가 채용하겠나. 입사할 때부터 학력은 나와 무관했다. 불편한 경우는 있었지만 적어도 내게 학력이 회사에서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같이 일한 아랫사람 중에 서울대를 비롯, 명문대 나온 친구들이 적지 않다. 서로 큰 애로사항 없이 지내왔다. 오늘 내 위치가 그 결과 아닌가. 언젠가부터 ‘학력은 옷에 붙이는 장신구에 불과하다’고 마음먹으며 살아왔다.”

-언제 어떤 계기로 입사했으며 그동안 성과는.

“사촌언니가 권해서 37세 때인 92년 이 회사의 전신인 신동아화재에 들어왔다. 특채였다. 중졸의 전업주부가 공채는 안 되지 않느냐. 보험영업과 설계사를 모집하는 일이 주 업무였는데 처음부터 열심히 했다. 당시 내가 살던 경남 하동의 군민이 5만명이 채 안 됐는데 직원을 30명 정도나 뽑고 관리했다. 그러다가 94년 정식 직원이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업소장이 됐다. 당시 하동 시장점유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 등 죽기 살기로 일했다. 지금까지 지점장 12년, 지역단장 8년, 지역본부장 2년을 역임하면서 ‘연도대상’을 11번 받았다. 연도대상은 사실 한 번 받기도 정말 어려운 상이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내게 베풀어 준 혜택이 엄청나다. 대리, 과장, 부장 모두 특진을 했다. 현장 경험과 전문성, 성과를 인정해 준 회사가 고맙다. 개인이 노력해도 회사가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대단한 기록들이다. 그 과정에서 위기는 없었나.

“위기라기보다는 2006년 처음으로 지역단장을 맡았을 때 윗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학력도 낮은 여성이 여러 영업소를 관할해야 하는 큰 조직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우려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경영진을 찾아뵙고 ‘절대 걱정 끼치지 않겠다. 믿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 약속을 지켰다.”

-회사 일에 매진하다 보면 가족들의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거의 없었다. 자랑 같지만 최선을 다했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시할머니 대소변을 받아냈고 당뇨로 고생하신 홀시아버지를 16년 모셨다. 그러다 보니 부끄럽지만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 남편과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소홀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둘째아들은 지금 우리 회사 지점장으로 있다. 엄마가 밉고 섭섭했다면 뒤를 따르겠나.”

-인생관이랄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나.

“1%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고민했고 방법을 찾느라 노력했다. 남들이 볼 때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저학력인데다 보시다시피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니다. 늦은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고 벌써 60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단점을 스스로 극복한 지 오래다. 끝까지 하면 안 되는 게 없더라. 내가 걸어온 길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리더십의 기반은 뭔가.

“관리자가 된 후 일관되게 나는 어머니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했다. 어머니란 누군가. 아무리 못난 자식도 한두 가지 능력은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이다. 좀 뒤처지는 직원도 자주 격려해 그 친구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 성과는 저절로 나온다.”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간절함을 가져야 된다. 절대 미리 한계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 경우를 봐라. 나도 할 수 있는데 더 뛰어난 능력과 환경, 자질을 지녔다면 문제없지 않겠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레 겁먹지 마라.”

-앞으로 계획은.

“조직원으로서 최우선 목표는 당연히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의 성장이 자연스레 따르는 것이 아닌가. 우리 회사에는 나를 뒤따르는 여성 후배들이 좀 있다. 그들이 앞으로 점점 더 커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 것도 내 몫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여성의 유리천장이 없어지는 데 작은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 만난 사람=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