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진호 <10> 학원폭력 지킴이로 지역사회 섬기기 새로운 도전

도봉교회 선교회 순번 정해 동네 순찰… 독거노인 방문 청소·말벗 돼주기도

[역경의 열매] 김진호 <10>  학원폭력 지킴이로 지역사회 섬기기 새로운 도전 기사의 사진
2002년 10월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열린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제25회 총회에 참석한 김진호 목사(왼쪽)와 송복순 사모. 김 목사는 당시 총회에서 기감 감독회장에 선출됐다.
서울 도봉구 도봉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1990년대 이야기다. 나와 교인들은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도 적극 나섰다. 그중 하나가 학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벌인 ‘청소년 지킴이 운동’이다. 우리는 도봉 지역 청소년을 위한 사역을 고민하다 이 운동을 시작했다.

도봉교회 근처에는 3000명 넘는 학생이 재학하는 북서울중학교가 있었다. 우리는 이 학교 아이들부터 섬기고 돌보자고 생각했다. 여선교회 회원들은 매일 오후 3∼5시, 청장년선교회 회원들은 오후 8∼11시에 조를 짜서 동네를 순찰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거나 약한 학생을 상대로 돈을 갈취하는 학생이 있는지 살폈다. 운동은 90년대 초반부터 7년간 지속됐다.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도봉교회의 청소년 사역은 국민일보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주민들로부터 “도봉교회 덕분에 우리 아들, 딸이 학원폭력의 피해를 덜 받게 되었다”는 칭찬도 자주 들었다. 이 밖에 지역 독거노인을 상대로 매주 토요일 죽을 배달하는 사역도 전개했다. 여선교회 회원들은 이들 노인가구를 방문해 청소를 해주거나 말벗이 되어주었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은 교회의 사명이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교회의 갈길’이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리신다.’ 교회가 교인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지역사회를 섬기면서 모든 이들을 보듬는 곳이 바로 교회다.

2000년 도봉교회 새 성전을 완공한 뒤 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서울연회 감독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그때까지 난 이른바 ‘교단정치’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교단의 학원선교 사업 등을 도운 적만 있을 뿐 목회에만 전념하며 살았다.

선거 출마를 결심할 때부터 나는 감독을 ‘명예’가 아닌 ‘사명’이라고 여겼다. 하나님이 내게 감독직을 허락해주시면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내겐 남들과 같은 선거운동 조직이 없었다. 총회 대의원을 일일이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선거는 2002년 10월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열린 제25회 기감 총회에서 치러졌다. 서울연회 감독 선거에는 나를 포함해 3명이 출마했다. 예상을 뒤엎고 나는 당선됐다. 10개 연회 감독이 선출된 뒤 감독회장을 뽑는 순서가 이어졌다. 현재 감리교단 감독회장 제도는 4년 전임제이지만 당시는 감독회장이 연회 감독과 개교회 담임목사를 겸임하는 게 가능했다. 임기는 2년이었다.

감독회장은 주로 서울연회나 서울남연회 감독이 맡곤 했다. 나는 서울남연회 신임 감독과 감독회장 선거를 치렀다. 1차 투표에서는 서울남연회 감독이 나보다 50여표를 더 득표했다. 하지만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했기에 2차 투표가 이어졌다. 투표 결과는 ‘동점’이었다.

다시 3차 투표가 시작됐고 나의 당선이 확정됐다. 당선자로 호명되자마자 난 엎드려 기도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저의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총대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축하 인사는 “김진호 목사를 감독회장에 세운 건 대의원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말이었다. 선거운동 조직도 없이 감독회장에 선출된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이었다. 나 역시 내가 잘나서 감독회장이 되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모든 건 하나님의 뜻이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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