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청구권협정] 1974년 법률 제정 2년간 보상 실시… 사망자 8910명 1인당 30만원 지급

1965년 협정체결부터 헌재결정까지

[한일청구권협정] 1974년 법률 제정 2년간 보상 실시… 사망자 8910명 1인당 30만원 지급 기사의 사진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은 냉전(冷戰)의 산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흑자를 누리던 미국 경상수지는 1950년대 적자로 돌아섰다. 공산권 국가들의 저개발국 원조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 저개발국 원조를 맡아주길 바랐다. 걸림돌은 ‘한·일 과거사 청산’이었다.

미국이 협상 금액까지 제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끝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은 시작부터 불안정했다. ‘청구권’에 대한 명확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출발했다. 협정에 따라 당시 화폐가치로 5억 달러를 받은 박정희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게 보상한 돈은 90억여원에 그쳤다. 학계에선 박정희정부가 피해자 실태를 충분히 조사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보상에 소극적이었다고 본다.

23일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박정희정부는 71년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그해 5월 21일부터 10개월간 신고를 받았다. 이때 신고된 인명관계(사망자) 건수는 1만1787건이었다. 한·일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에 사망자 수로 제시했던 7만7603명보다 크게 적었다. 전쟁 통에 호적 등 서류를 분실한 이가 많았고, 정부의 청구권 신고 홍보도 부실했다. 피해자 유족들은 대중매체를 접하기 힘든 지방에 살거나 문맹인 경우가 다수였다.

박정희정부는 74년 ‘대일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듬해 7월 1일부터 2년간 보상을 실시했다. 심사를 통과한 사망자 8910명에 대해 1인당 30만원씩 총 25억6560만원을 지급했다. 회담에서 일본에 제시했던 1인당 1650달러(당시 환율 기준 66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대일민간청구권협회는 71년 대연각호텔 화재 사망자에게 700만원이 지급된 예를 들어 반발했다. 정부는 사망한 국군 사병·예비군에게 지급되는 일시금에 준해 보상금을 책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인은 일시금 외에도 유족에게 월 4200원의 연금이 지급됐다는 점에서 소극적 보상이었다는 비판이 많다.

또 재산권 보상금으로는 66억1695만1000원이 쓰였다. 광복 당시 엔화로 표기된 재산에 대해 정부는 1엔당 30원 비율로 보상한다고 결정했다. 대일민간청구권협회는 실질적인 구매가치 변화 및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1엔당 500∼1000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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