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나이가 선물이 되려면 기사의 사진
어제 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세월의 순서에 따라 자신의 사진을 정리한 성장앨범이었다. 하얀 모자를 쓴 갓난아기, 보행기를 타고 웃는 아기, 어느새 무릎보호대를 하고 깡충 뛰어다니는 아이,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얼굴로 자전거를 타는 소녀….

그런데 앨범을 넘기다 아이 옆에 20대에서 30대로 세월이 덧입혀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성장앨범’을 선물 받은 것이다.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 같다. 그 추억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평범하고 사소했던 그 하루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지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다.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알 길이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이해한 뒤에야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게 된다”고 말했다.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어느새 아이에서 청소년이 되고 성인에서 노인이 된다.

우린 다른 사람의 일을 알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의 생일을 기억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할애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까, 치매로 고통을 겪게 될까 걱정한다. 60, 70, 80세란 숫자가 선물처럼 느껴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먼저 나이 드는 것을 인정하고 성인발달단계를 잘 거쳐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노년기의 발달과업으로 ‘타인과의 화해’를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마음이 아팠던 일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화해를 청하라고 권면한다. 자신의 실수와 허물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상처 주었던 이들을 찾아가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서받고 용서하는 일은 단지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님께 가기 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과 화해하고 용서해야 통합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이기는 법도 배워야 한다. 고통에는 속죄의 힘이 있다. 이 힘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을 뜨게 하는 위대한 힘이다. 또 고통을 겪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노년기에 찾아오는 병과 고통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준비과정이며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는 기회의 시간이다. 노년은 걱정과 근심에 쌓여 후회와 좌절로 소비할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이고 말씀과 기도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 중년기 이후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 가치나 의미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는 ‘실존적 공간’을 갖고 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영혼에 자양분을 제공해 줄 놀이와 여가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묵상과 성경읽기, 기도 등으로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나의 영혼의 지문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며 영혼의 나이테를 만드는 방법이다.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훨씬 더 젊게 산다.

‘노인 1명이 쓰러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정신의 지문으로 세워진 도서관을 바라보듯 노인들의 연륜이 ‘아름다운 전통’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나이가 드는 것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자.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사람들 속에서 삶의 의미와 평화를 찾으면 나이가 선물이 될 수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한 주 후면 우린 또 하나의 숫자를 덧입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외면했던 것들에 대해 악수를 청하자.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위해 우리를 기꺼이 사용하실 것이다.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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