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사회를 향하여] 외로운 노인과 20대 청년의 ‘새콤달콤한 동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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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외로운 노인과 집 없는 청년을 이어주는 아주 특별한 동거가 있다.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 혼잣말을 되뇌던 할머니는 바라만 봐도 배부른 ‘손자’를 얻었다. 값비싼 월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청년에게는 따듯한 보금자리에 정까지 듬뿍 얹어주는 할머니가 생겼다. 2013년부터 3년째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는 ‘세대융합형 룸셰어링(Room Sharing·주거 공유)’ 사업 덕분이다. 이렇게 맺어진 노인과 청년의 삶은 단순히 집 하나를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해가며 벌어진 세대 간의 틈을 메우고 있었다.

한 식구된 할머니와 청년

윤덕순(81·여)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홀로 지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면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텅 빈 집은 늘 썰렁했다. 장성한 자식이 셋이나 있지만 모두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잊을 만하면 안부전화나 가끔 걸려온다. 손주들 얼굴은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다. 부엌 형광등이라도 나가면 교체하는 법을 몰라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한밤중 아파트 복도에서 덜컹거리는 소리라도 날라치면 강도가 들었을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윤씨는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 1주일 내내 말 한마디 못하고 TV만 멍하니 바라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랬던 윤 할머니는 요즘 혼잣말을 되뇔 필요가 없다. 말벗이 되어준 이는 룸셰어링을 통해 2013년 새로 얻은 손자 김정도(28)씨다. 전남 무안 출신으로 서울과학기술대 졸업반이던 김씨는 우연히 학교 기숙사에 붙은 공고를 봤다. 졸업을 앞두고 기숙사를 떠나 살 집을 구해야 했을 때였다. 40만∼50만원이나 하는 학교 주변 월세는 큰 부담이었다. 집을 알아보러 부동산에 들르면 비싼 월세에 한숨만 나왔다. 김씨는 노원구 룸셰어링에 지원하기로 했다. 면접을 겸해 집에 찾아온 김씨를 보고 윤 할머니는 “인상이 참 선해 보였다”고 회상했다. 사흘 뒤 그들은 한 식구가 됐다.

새로운 情 쌓는 특별한 만남

80대 노인과 20대 청년의 동거는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김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따로 집을 구하려 한 적도 물론 있었다. 경기도 과천 직장까지 너무 멀어 출퇴근이 고역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윤 할머니와 계속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할머니와의 동거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청년들에게 특히 팍팍해진 사회에서 윤 할머니가 있는 집은 김씨에게 정(情)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 됐다.

윤 할머니는 손자 같은 김씨에게 자꾸만 뭔가 주고 싶다고 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서 밤늦게 퇴근하는 게 늘 걱정된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과일을 챙겨주고 허기질까 라면도 끓여준다. 윤 할머니는 늘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을 건넨다. 가끔은 김씨 책상에 ‘몸 챙겨가며 일하라’고 쪽지도 남긴다. 김씨는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할머니를 보면 꼭 친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김씨도 손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윤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마다 부축하며 말동무가 돼주고, 약 먹을 시간도 챙긴다. 생신에는 근사한 식당을 찾아 함께 식사했다. 주말 아침이면 함께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할머니가 심심할까 봐 바쁜 출근길에도 한두 마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윤 할머니는 컴퓨터가 고장 나고 전구가 나가도 이제 걱정하지 않는다. 홀로 식사할 때 김치에 맨밥만 먹었는데, 요즘은 반찬에 부쩍 신경을 쓰게 됐다.

공간의 공유를 넘어 생각의 공유로

2년은 상대방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로가 갖고 있던 ‘노인’과 ‘청년’에 대한 선입견도 깨졌다. 김씨는 노인이라고 하면 으레 고집불통일 거라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윤 할머니는 달랐다. 언제나 자상하게 김씨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김씨는 “할머니가 경로당 친구들하고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노인의 관심사도 젊은 사람과 별로 다를 게 없어 신기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노인이라고 하면 멀게만 여겨졌는데 할머니와 살다 보니 친숙하게 느껴진단다. 김씨는 “할머니와 자주 대화하다 보니 직장 상사를 대할 때도 반듯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윤 할머니도 김씨를 보고 청년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사라졌다고 했다. 윤 할머니는 “젊은 애들은 사회에 불만만 많고 게으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매사에 착실한 김씨를 보고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요즘 애들은 걱정 없이 풍족하게만 사는 줄 알았는데, 청년 취업난 기사를 보면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윤 할머니는 요즘 김씨가 장가갈 때까지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은 갈 길 먼, 세대융합 룸셰어링

서울 성북구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던 최모(60·여)씨는 올 초 성북구청에서 ‘대학생과 함께 지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원봉사를 하려던 최씨는 남는 방 두 칸을 나누기로 했다. 스무 살 대학생 두 명과 함께 살게 되자 적막하던 집에선 웃음꽃이 피었다.

최씨는 학생들과 농담도 나누며 허물없이 지낸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컴퓨터도 고쳐주고 인터넷도 가르쳐줘 늘 든든하다”고 말했다. 또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경쟁적인 환경에 놓여 있고 쫓기듯 사는지도 알게 됐다”며 “마냥 쉽게 산다고만 생각했던 청년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성북구 내 대학에 다니는 학생 27명이 세대융합형 룸셰어링을 통해 노인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38만명에 달한다. 반면 지난해 기준 전국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18.8%에 불과하다. 대학생 주거문제와 ‘황혼 우울증’을 해결하는 데 룸셰어링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바탕이다. 학생들은 보증금 없이 주변 월세의 절반 정도인 20만원가량만 내면 돼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 노인들은 남는 집 한쪽을 나눠서 조금이나마 수입을 거둘 수 있고, 빌려주는 방만큼 환경개선비도 지원받는다. 무엇보다 더 이상 쓸쓸하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룸셰어링이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서울시 전체로 보면 7개 구에서 청년 143명이 노인 115명과 함께 지내고 있을 뿐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생 A씨(22·여)는 지난해 룸셰어링에 지원해 이사했다가 한 달여 만에 쫓기듯 나왔다. 집주인이 세탁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사사건건 간섭이 심했다. 룸셰어링 사업을 담당하는 한 구청 관계자는 “학생은 노인의 간섭을 꺼리고, 노인은 학생의 자유분방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학생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최씨는 “세대 갈등을 넘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조금씩만 노력하다 보면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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