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기고] 끝나지 않은 종교개혁,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자

종교개혁 500주년 앞둔 한국교회

[신년 특별기고] 끝나지 않은 종교개혁,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자 기사의 사진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1년 앞둔 해이다. 종교개혁 기치 아래 살아온 한국교회는 설레는 가슴으로 내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부터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서구교회와는 달리 한국교회는 비록 130년 정도의 시간을 몸으로 살아온 비교적 짧은 개신교 역사이긴 하지만 종교개혁 정신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준수해 왔다는 자부심이 크다. 그래서 세계교회와 더불어 종교개혁이 출범하던 당시의 상황을 되새기며 종교개혁 본래의 뜻을 밝히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본래의 진정한 모습을 지금 얼마나, 어떻게 지니고 있는지 솔직하게 살펴보면서 오늘과 내일을 향한 본래의 제 모습을 찾고 또 새롭게 만들기에 함께 나서야 한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문교회 정문에 나붙은 루터의 저항적 대자보 ‘95개조 테제’가 종교개혁의 불길을 댕긴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음은 다 알고 있다. 정황상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도도하게 번진 종교개혁 물결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기적 같은 사건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미 교회 안과 특히 교회 밖의 지성사회에서는 신앙과 학문의 본질을 찾자는 운동이 열화같이 번지고 있었다.

예컨대 문화예술의 융성을 가져온 르네상스 물결과 함께 인간의 자율적 사고와 자유를 주창하는 인문주의 태동이 그것이다. 본류를 찾으려면 먼저 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고전이 되살아났다. 교회 내에서는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교회 행태의 온갖 부조리에 멍든 신앙인들의 가슴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 큰 울림을 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고전이란 무엇이었나.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신앙이, 교권의 자리에 그리스도가, 인간의 행함 대신에 하나님의 은혜가, 교리와 전통 자리에 성경말씀이 교회 본연의 중심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울림이었다.

종교개혁은 본래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하자”는 개혁운동이었다. 교회가 영적·세속적 권한을 행사하던 중세 말기의 혹독한 ‘암흑시대’라 칭했던 상황에서 교회개혁의 외침은 교회영역 안에만 머물지 않고, 교회 밖의 세계 역사현장에서도 커다란 파급효과가 있었다. 사회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 개혁 선풍이 협력하고 연대해줌으로써 당시의 기득권 체제의 저항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물결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교회개혁이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고 사회는 교회로 하여금 변화의 주역이 되도록 도전한 셈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가 처한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정교일치가 아니라 정교분리의 상황이고, 다종교 사회를 살아가며 모범을 보여야 하는 데다 특히 개신교는 사회의 질타와 호된 비판 앞에 서 있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지경으로 내리막길을 달린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의 염려와 비판은 이렇다. 물신주의와 이기적 기복신앙은 속성상 면죄부 판매 행태의 아류가 아닌가. 중세교회의 집단적 교권주의가 오늘날 거꾸로 개신교에 와서는 개별화된 권위주의로 둔갑한 게 아닌가. 중세기, 교회는 있는데 그 속에 복음이 실종되었다고 했지만 지금의 한국에는 복음은 있는데 자리할 교회가 없다는데 맞는가. 그리스도의 빛을 그리스도인들이 가린다는데 실제 그런가. 교회 울타리에서의 신앙 열성은 높은데 사회생활 속에서의 도덕과 윤리 수준이 낮으니 문제 아닌가.

이런 소리를 들으면 일부의 일탈된 교회와 교인들 때문에 일면 수긍할 점이 있으면서도 대개는 분하고 화도 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현재 한국 개신교의 위기의 본질은 사회봉사와 사랑의 사역을 크게 집합적으로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교회 본래의 ‘영적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뚜렷이 나타내지 못해서라는 생각이다. 사랑의 봉사는 지속하되, 그와 함께 누구나 믿고 따라가고 싶은 영적 실체로서의 정체성 회복이 오늘의 시급한 과제임을 확인하고 타당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다음으로 종교개혁 정신에 입각한 교회다움의 회복을 교회 안팎의 새로운 리더십 형성으로 마련해야 한다. 오늘의 사회는 중세기의 교회나 사회의 리더십 체제인 수직적 권위와 복종이 아닌 자유와 공평을 기반으로 하는 수평적 나눔과 책임공유의 지도력을 원한다.

오늘날 우리 개신교회의 운영과 권위체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경말씀에 있는 ‘한 몸- 여러 지체’(로마서 12장)의 모형이 바로 그것이다. 진정한 목회적 리더십은 주님의 한 몸에 속한 다양한 지체인 성도들이 각자 받은 달란트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몸을 건강하게 세우고 활력을 불어넣는 화음이 되도록 해야 하고, 그 화음을 가능케 하는 지휘자는 목회자이며, 지휘 대본은 성경말씀임을 믿고 실현하는 리더십이다. 이것을 ‘심포니적 리더십’이라 하면 좋겠다.

교회공동체가 이런 리더십 구조를 구체화하여 운영되고 또 이를 사회에 보여줄 수 있다면 한국사회는 보다 더 성숙한 민주사회로 이행하는 데 큰 활력소를 얻을 것이며 동시에 사람들이 기뻐서 교회로 다시 찾아 들어오는 새로운 선교의 계기가 될 것이라 본다.

또 한 가지는 사회 속에서의 기독교인 모두의 삶의 모습을 개혁하는 일이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과 교회공동체 앞에서 진정성을 가져야 하듯, 일상에서의 생활신앙 역시 하나님과 사회도덕 내지 윤리 앞에서 똑같이 진정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주일의 하나님이 주간 중의 하나님이시고, 교회 안에서의 봉사가 영적 성직 수행이듯이, 이 세상 직업 현장에서의 소명과 봉사가 또 하나의 성직처럼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구교와는 다른 전통에 서 있는 ‘정교회’가 고백하는 예배와 삶의 일치를 배우면 좋겠다. 일상의 삶은 ‘예배 다음에 드리는 또 하나의 예배’라는 고백이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에 동참하면서 교회됨의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부여받고 있다. 우리는 새로 날 수 있다. 새로 나야 한다. 이미 주어진 ‘개혁된 교회’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을 위한 구원의 ‘소금’과 세상을 비추는 ‘빛’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항상 새롭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박종화 목사 <경동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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