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탈북민은 남한의 ‘섬’에 살고 있다 기사의 사진
한국 사람들과 북한이탈주민들 사이에 깊은 강이 흐르고 있다.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그 강 너머의 외딴섬에 그들끼리 살고 있다. 탈북민들은 우리사회에서 왕따 1호가 돼 있다. 탈북민들은 웃을 줄을 모른다. 개인적인 문제에 약하고, 잘못한 경우에도 사과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해가 필요하다. 북한 공산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통제와 감시로 사회 질서가 유지되는 북한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경우 그는 수용소에 가거나 처형당할 수 있다. 사과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생명이 달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탈북민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북한에서 유명한 영재고등학교의 부교장(교감)을 지낸 교육자다. 아내는 일하러 가고 홀로 아파트를 지키고 있던 그는 음료를 내오면서 “한국에 온 이후 남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겸연쩍어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아직 한국사람 댁을 방문해본 적이 없어요.”

8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남한 출신 사람과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없었다는 말에 나는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는 고위 교원을 지낸 사람이라 그런지 보통 탈북민과는 다르게 잘 웃고, 싹싹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8년간 남한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60대 초반에 일자리 얻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이나 미화원 자리라도 얻으려고 이력서를 수십 번이나 냈지만 받아주지 않더군요. 찾아가서 문의해보면 돌아가서 기다리면 잘될 것이라고 모두 똑같은 말만 하던데, 참 이상한 노릇이지요?”

그는 “기다리면 잘될 것”이라는 말은 사실상 거절이라는 남한식 어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북한에서 미술교사였다는 그의 부인은 식당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투가 이상하다고 동료 아줌마들로부터 계속적인 수군거림을 당해야 했다. 어느 날 ‘왜 사람을 놀리느냐’고 항의했다가 ‘이× 저×’ 소리 들어가며 왕따를 당하고 나서 지금은 건물 미화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그 며칠 후 그는 우리집을 방문했고,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8년 전 하나원에서 살 집을 배정받고 나와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신분증을 발부받던 날의 뼛속 깊은 막막함을 이야기했다. 국가를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을 받아주고 작은 임대아파트까지 지원해주는 정부에 한없이 고맙다는 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탈북민들은 남한사회의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소외감을 토로했다. “북한에서 굶주리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도 상당히 비통스럽답니다.”

우리는 충북 충주의 외가도 방문했다. 외사촌의 환대를 받고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사촌도 남남인데 외사촌-고종사촌 관계가 돈독한 것에 놀라며, 그럴수록 한국에서 겉도는 자신들의 처지를 쓸쓸해했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남북의 주민들이 동질성을 회복해 함께 잘사는 것이 통일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유사한 생각이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국력이나 국제관계나 무고한 백성을 죽인 숫자로 보거나 북한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실천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새해 들어 다시 통일담론이 유행하고 있지만 남북 간에 아무런 소통이 없고, 우리의 선제적인 노력도 부족하고, 국민들은 배타적이고, 승자독식의 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환경에서 통일은 멀고 먼 날의 꿈일 것이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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