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열네 살 소녀 옥분이 기사의 사진
열네 살 소녀 옥분이가 자신이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인 이유 다섯 가지를 꼽았다. 1906년 12월 25일 미국 감리교가 서울에 세운 병원의 병실에서였다. 소녀는 동상으로 두 손과 다리 한쪽을 자르는 수술을 받고 회복되는 과정이었다. 옥분이가 병상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감리교 여선교사 미네르바 구타펠(1903∼1912년 한국 체류)에게 말했다.

“제 모든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에 저는 가장 행복해요. 또 여기에 있는 동안 몇 달 동안 매를 한 번도 안 맞았어요. 이곳에 온 후로 배고픈 적도 없어요. 의사 선생님이 ‘그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계속 여기 있어도 된대요.”

통증, 폭력, 굶주림, 두려움을 벗어난 네 가지 이유였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다섯 번째 행복 이유를 댔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았어요. 그렇게 예쁜 걸 본 적이 없거든요.”

구타펠이 물었다. “이제 다 말했니?” “아뇨, 선교사님. 하나가 더 있어요. 내가 예수님께 기도하면 손발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죄를 씻어주신다고 사람들이 말했잖아요. 두 손이 없고 발도 하나만 있는 나 옥분이도 예수님이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기도했더니 그분이 정말 들어주셨어요. 내 죄를 다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나를 사랑하세요. 나는 진심으로 그걸 알아요. 선교사님, 내가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예요.”

이 얘기는 구타펠이 본국에 돌아가 선교보고를 하면서 정리한 내용이다. 자신의 어린 여동생과 주일학교 교사들의 요청으로 조선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궁금증을 이야기로 풀었다. 관련 잡지에 투고도 했다.

열네 살 옥분이는 그해 초겨울 한 양반 손에 이끌려 외국인 의사가 있는 병원에 던져졌다. 손과 발이 동상에 걸려 죽기 직전이었다. 구타펠의 표현에 의하면 그 양반은 “가능한 한 빨리 나아서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용가치’, 노비였고 노예였다. 따라서 조선 율법에 따라 옥분이는 ‘하나님의 자녀’ 즉,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여성이었다.

구타펠은 가난한 소녀 옥분이는 남은 동생들 먹을 양식을 받는 대가로 부잣집 종으로 팔렸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주인은 노동, 굶주림, 매질을 가했다. 동상으로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외국인 병원이었다. 소녀에게 눈처럼 흰 시트의 침대, 쿠키 등 먹을 것, 친절한 말, 따스한 미소가 천국처럼 다가왔다. ‘병원 부인’이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라는 것도 해주었다. 옥분이는 그렇게 8개월여의 투병 끝에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네 번째 행복,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니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소녀는 이후 한글을 배웠다. ‘사랑하는 부인께’를 첫 문장으로 선교사에게 편지도 쓰게 됐다. 쪽머리에 흰 저고리를 입은 옥분이의 사진은 ‘THE HAPPIEST GIRL, IN KOREA(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는 사진 설명으로 남아 있다.

이 애잔한 이미지가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과 오버랩됨은 무엇 때문인가. 오늘 살아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가해진 통증, 굶주림, 폭력, 두려움…. 옥분이보다 더했으면 더했다. 그 할머니들 또한 ‘열네 살’이었다. 한데 정부는 그분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소냐’나 ‘카튜샤’ 취급하는 패악적 극렬 시위대마저 있다.

옥분이는 살이 올랐다. 이를 본 불신 조선 여성들이 수군거렸다. “의사들이 손을 잘라낸 칼을 가지고 저 여자의 심장에 꽂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 그랬으면 고생도 안 하고 돈도 안 들었을 텐데.”

한·일 관계의 정치적 해법의 목소리를 낼 사람은 내야 한다. 하지만 ‘심장에 칼을 꽂는 행위’에 대해 크리스천이 침묵하고 있다면 그건 헛믿음이고 헛사랑이다.

전정희 종교부장 jhje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