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기영] 核실험 이후, 균형과 진화 필요 기사의 사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불과 며칠 전 신년 연설을 통해 “누구와도 마주앉아 통일문제를 논의하겠다”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언급은 오간 데 없어져 버렸다. 새해 첫 아침 유독 평화통일을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도 아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질 뿐이다.

기습적인 4차 핵실험 이후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 제재와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로 인한 남북관계의 냉각 국면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강대강의 대치 국면이 이런 상태로 지속된다면 박근혜정부 4년차를 맞는 올해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방법론적 원칙은 ‘균형’과 ‘진화’이다. ‘균형’은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 그리고 남북협력과 국제공조의 균형을 의미한다. 8·25합의 역시 ‘균형’의 산물이었다. 북한의 군사도발 대응이라는 안보상 요구와 교류협력 재개라는 남북관계 측면의 필요성을 조화롭게 ‘균형 잡은(align)’ 결과가 8·25합의였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8·25합의 이행을 통한 교류협력 재개에서 군사안보 강화 쪽으로 남북관계의 균형추를 다시 이동시켰다. 남북관계의 재균형을 위해서는 교류협력을 통해 새롭게 ‘평화를 만들기’보다 핵실험의 충격으로부터 당장의 ‘평화를 지키기’가 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불과 한 달 전 차관급 당국회담에서 우리 측이 요구했던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더욱 늦어지게 되었고 북측이 요구했던 금강산 관광 재개 역시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4차 핵실험 이후 대북정책의 ‘진화’ 가능성을 아예 닫아버릴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북한 주민의 소득은 남한 주민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국민총소득(GNI)으로 치면 북한은 남한의 44분의 1이다. 올해 당장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마주할 현실은 이렇게 참담하다. 통일대박의 꿈도 이래서는 달성하기 어렵다.

동서독 통일 당시는 어땠을까. 동독 주민의 1인당 소득은 서독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게다가 서독 인구의 4분의 1 수준이었던 동독과 달리 북한 인구는 남한의 절반에 이른다. 남북한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은데도 독일은 통일 이후 홍역을 치렀다.

대북정책의 ‘진화’는 북핵 문제를 포함한 정치·군사적 의제와 경제협력 의제의 동시병행, 민간과 정부의 역할 분담 등을 바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4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가 빈사상태로 접어든 상황에서는 민간단체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이들 민간단체들은 지난 20년간 구체적 남북 협력사업을 통해 쌓아온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과거 남북경협에 미온적이었던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들도 앞다퉈 경협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정책 진화 없이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진화를 논의하는 것조차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정권은 4차 핵실험을 통해 남북관계와 8·25합의의 이행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국제공조를 통해 ‘강력하고 포괄적인 제재’가 효과적으로 진행된다면 북한의 태도 변화도 예상해볼 수 있다. 오는 5월로 예정된 노동당 7차 당대회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김정은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성기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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