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응팔’에서 읽는 한국경제의 불안 기사의 사진
케이블 채널 tvN의 ‘응답하라 1988’(응팔)이 오는 토요일 방송으로 끝이 난다. 지상파 평균을 뛰어넘는 고공 시청률로 관심을 끌었던 이 작품은 문화적 신드롬을 낳으며 큰 반향을 불러왔다. 방송비평가들이 꼽는 성공 요인은 ‘추억, 향수, 따뜻함, 음악, 연기력, 디테일, 시대상황’ 등 여러 가지다. 나는 여기에 ‘불안’이란 키워드를 더한다. 내일에 대한 절망을 낳는 오늘의 불안이 응팔을 키워낸 핵심이라고 본다. 대학진학,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실직, 노후, 건강, 죽음 등 인생의 고비마다 맞닥뜨리는 현재화된 불안이 과거에의 온기를 갈망케 하면서 세대를 뛰어넘은 인기를 구가했다고 여긴다. 극중 배경인 1988년을 경험하지 못했던 20, 30대의 팬덤 현상이 한층 강렬했다는 점이 그 방증의 하나다.

상당수 개인 불안의 근원은 알랭 드 보통이 지적한 ‘경제적 능력에서 비롯된 사회적 위치의 불안’이다. 시작도 귀착점도 돈이고, 한마디로 경제로 인한 불안이란 얘기다. 이 불안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상황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 경제를 누르는 안팎의 불안 요소는 널려 있다. 작년 12월 31일 내일신문 기사에 따르면 경제학과 교수, 민간 및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경제 전문가 2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2년 내 경제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56.9%가 ‘그렇다’고 답했다. 불안은 공포를 머금고 위기로 이어지며 드물지만 공황(panic)에 이른다. 불안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이유다.

전 뉴욕대 의대 정신과 부교수 제임스 휘트니 힉스는 저서 ‘정신질환의 50가지 신호’에서 불안 치료에는 ‘플라시보 효과’(위약효과: 환자가 진짜 약인 줄 알고 먹는 가짜 약을 통해 효험을 얻는 것)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위약 처방 환자의 3분의 1 정도는 증세가 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약의 효험은 대증적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전으로 돌아가 보자.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이 연일 소용돌이쳤지만 정부는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해 걱정 없다’로 일관했다. 위약을 복용한 국민들은 잠시 안정되는 듯 했으나 이후 결과는 참담했다.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도 기시감이 어른거린다. 중국경기 침체, 미 금리 인상, 저유가 지속, 신흥국 저상장 여파 등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외생변수가 간단치 않다. 당국이 내세우는 ‘세계 6위의 충분한 외환보유액’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 등이 위약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나.

그나마 우리가 즉각적으로 대응 가능한 경제 불안은 가계부채와 부동산이다. 문제는 이 둘이 길항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가계부채를 줄이면서 부동산의 불씨도 꺼트리지 않는 비방을 찾는 길이 너무 힘들다는 데 고민이 깊다.

경제 불안의 근본 해법은 경제 새 판짜기고 그 통로는 ‘공유 자본주의’와 ‘포용적 경제’가 돼야 한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이 시스템은 G2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핵심 의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글로벌 경제의 큰 틀에 속해있는 우리나라가 결코 소홀히 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안을 키우는 것은 경계해야 하나 애써 외면하면 후폭풍은 더 거세다. 한국경제에 관한 한 ‘만사불여튼튼’이란 사실은 경험으로 확인됐다. 복고에 열광하는 사회는 현실과 미래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응팔’은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임에 분명하지만 그 환호의 반대편에 있는 불안의 그림자는 너무 짙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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