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윤중식] ‘전철’은 오늘도 달린다 기사의 사진
매일 새벽 1시면 신문배달을 하는 전철(68)씨의 인생유전 이야기다. 그는 22년간 경찰공무원이었다. 18년 전 명예퇴직 후 시작한 사업이 실패해 ‘빚쟁이’가 됐다. 이 바람에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부인의 삶도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현재 전씨의 본업은 인테리어 회사 창고지기다. 그는 신문배달과 고물·폐지 등 돈이 될 수 있는 잡일도 마다치 않고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아내 우은숙(67)씨도 집에 혼자 두면 안 되는 시누이 연숙(51)씨를 돌보면서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지체장애 2급인 연숙씨는 30여년 전 시어머니가 양녀로 데려왔다.

대구에서 파출소 경감까지 지냈던 전씨는 공직에 있을 때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야간학교도 운영하는 등 ‘불우근로 청소년의 대부’였다. 교사 아내를 만나 결혼해 330㎡(100평)가 넘는 정원이 있는 집에서 두 아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전씨는 명예퇴직 후 건설회사를 차렸다. 욕심과 의욕이 앞서서였을까. 1998년 외환위기(IMF)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그의 꿈은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눈만 뜨면 돈 빌리러 다녔다. 자신과 아내의 퇴직금과 쌈짓돈, 선산까지 은행 빚 경매로 다 날려버렸다. 부친마저 화병으로 별세하자 10여년 전 상경해 한때 노숙자 생활로 방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지난해 작고)와 세상 사람들에게 진 빚을 그냥 남기고 떠날 순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제에게 긴급구조(SOS) 요청을 했다. 다행히 회사 창고지기 일을 시작한 전씨는 거기서 먹고 자며, 전국 각지로 자재나 물품을 배달하는 일을 했다.

1년 중 360일은 라면 한 끼로 때웠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잠드는 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보급소에서 최고령이지만 항상 1등으로 출근해 200부 정도의 신문을 돌린 뒤 곧바로 고물과 폐지 줍는 일을 하곤 했다.

아내도 정수기 외판원부터 식당일, 텔레마케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일을 하면서 두 아들과 사촌 시누이를 돌봤다. 두 아들은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곧고 바르게 자랐다. 첫째 덕호(37)씨는 인디밴드 ‘슈퍼키드(Super kidd)’ 보컬이다. 둘째 두호(36)씨는 아버지의 희망대로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주말이면 창고 옆 컨테이너에서 동네 사람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봉사를 한다.

전씨는 5억원에 가까웠던 빚을 거의 청산한 상태다. 하지만 평생을 두고 갚아도 다 갚지 못할 빚이 하나 있다. 오래전 야간학교의 제자가 고맙게 빌려준 2000만원 중 일부다. 그 빚은 당장 갚을 생각이 없단다. 두고두고 조금씩 갚고 싶어서다. 그것은 빚 그 이상의 고마움까지 평생을 잊지 않고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안 되지요. 처음엔 나에게 치욕과 모욕을 준 사람에게 복수할 심정으로 칼을 갈기도 했지만 이제는 가장 낮은 자세로 일하며 땀 흘려 번 돈의 가치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빚을 몽땅 갚은 거지요. 이것이 멋진 복수가 아닐까싶습니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 신성교회(문명준 목사) 안수집사인 전씨는 두 아들에게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하다며 10여년 동안 자신의 분신이 된 대학노트 한 보따리를 형제에게 내밀었다. “내가 니들한테 돈을 물려줄 수는 없다. 내가 유산이 없어 이 ‘새벽기도 일기’만 남기고 가더라도, 이게 하잘것없는 종이 나부랭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잘 찾아보면 보석보다 귀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잘 간직해라.”

최근 한 지상파에서 ‘전철은 달린다’란 제목으로도 방영된 그의 스토리는 정초 새로운 계획과 도전 앞에선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다.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며 살아야 하는지를 전씨는 온몸으로 보여줬다.

윤중식 종교기획부 부장 yunjs@kmib.co.kr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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