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울루루 쪽으로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시 비행기를 세 시간 타고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내렸다. ‘엘리스 스프링스’는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루루’를 여행하는 거점도시이다. 그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대여섯 시간 들어가면 아웃백 호주, 원시와 문명이 공존하는 묘한 세상에 떨어진다. 호주 중앙사막에서 지낸 날들은 신비롭고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곳곳에 호주 원주민을 일컫는 애버리지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원주민 문화센터 교사가 알려주었다. 그건 그들 문화에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란다.

호주 원주민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프로젝트로 호주에 간 우리 일행 다섯은 주변 사막도시 ‘테넌트 크릭’에 짐을 풀고 1주일 동안 사막 구경만 하며 작품을 했다. 사막에 작품 재료들이 널려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돌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과 색깔·질감을 지닌, 호주 사막 어디에서나 아니 우리가 묵었던 아트센터나 숙소의 뒷마당에도 흔하게 널려있는 돌들은 바라만 봐도 행복했다.

시내라고 해봤자 중심가 오른편과 왼편에 있는 커다란 주유소와 중국 음식점 하나와 푸드마켓과 별의별 물건을 다 파는 약국이 하나 있을 뿐이다. 약국이 있는 그 허름한 길에 원주민 노인들이 마치 원시 조각처럼 앉아 있다.

그냥 삼삼오오 흙길에 주저앉아 밥을 먹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한다. 놀라운 건 이런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약국이나 마트에서 파는 훌륭한 물건들은 호주가 얼마나 문명국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거다.

유럽에서 온 호주 이민자들에 의한 정부시책으로 1945년부터 56년까지 원주민 부모들과 아이들은 격리됐고, 영어를 가르쳐 성경을 읽게 했다. 문명의 이름으로 많은 원주민 아이들은 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자랐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원주민 부모와 자식을 찾아주는 운동이 일어나고, 호주 정부는 그들이 빼앗았던 황무지 땅을 원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시작한다.

우리는 주말에 원주민 농장에 초대돼 식사를 대접받았다. 점심때 도착하니 원주민 아저씨가 우리를 위해 새벽에 사냥한 캥거루 두 마리가 피를 낭자하게 흘린 채 모래 바닥에 누워있었다. 가엾게도 어미 품속의 새끼는 꿈틀대다가 서서히 숨이 멎었다.

그런 슬픈 풍경에 항상 새끼를 뱃속에 품고 다니는 모성 가득한 캥거루의 이미지는 무참히 깨져버렸다. 운동량이 많아 쫄깃쫄깃한 게 꼬리 쪽이 맛있다며, 캥거루가 다 익을 때까지 꼬리 부분을 거꾸로 들어 불 속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그슬린다.

호주를 개척하러 온 유럽 이주민들로부터 캥거루보다 나을 것 없는 죽음과 억압을 당해 온 사막의 농장 원주민들은 아직도 그렇게 매일 캥거루 사냥으로 식사를 준비한다. 아무런 식욕이 나지 않았는데도, 익어가는 캥거루 고기 냄새가 구수하게 스며들었다. 삶이란 어디서나 참 모질다.

중앙사막 어디에서나 화려한 원주민 예술이 정부 정책의 하나로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울루루를 가는 길에 엘리스 스프링스와 주변 곳곳의 아트센터에 들러 원주민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을 사 간다. 어찌 보면 호주는 원주민 예술이 모든 풍경과 일상에 묻어있는 미술의 나라다.

아트센터에서 며칠간의 작업을 마치고 엘리스 스프링스로 가는 길에 거대한 붉은 돌덩어리들이 마치 신의 조각품처럼 놓여있는 ‘데빌스 마블’이 있었다. 언제부터 그 거대한 돌덩이들은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돌마다 원주민들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담긴, 마법의 돌들이었다. 악마의 돌이라 불리는 위대한 기운이 서린 거대한 돌들의 풍경 속을 한참 헤매고 난 뒤 문득 현기증을 느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 거대한 돌들이 선사시대 공룡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엘리스 스프링스로 돌아와 짐을 풀고, 갤러리의 그림들과 공예품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은 다음 날 아침 세상의 배꼽이라는 울루루를 향해가는 숨 고르기였다.

차를 타고 너덧 시간 달려서 도착한 하늘에서 딱 떨어진 듯한 거대한 돌덩어리 울루루, 그렇게도 원시적인 장소가 우주적인 공간을 연상케 하다니, 그저 놀랍다.

배경 하늘을 우러러보면 그 푸른색에 눈이 부시다. 해가 질 때까지 울루루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착각을 하게 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속으로는 아니었을까? 석양 무렵 울루루는 붉디붉게 타올랐다. 사랑하는 순간의 우리들의 심장처럼.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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