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산으로 가는 노동시장 구조개편 기사의 사진
정부가 하도 ‘노동개혁’을 외치니까 도대체 그 실체가 무엇인지 국민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추진하려 했던 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 의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과 근로조건 격차가 고착화되고, 양자 간 경쟁이나 이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 의제를 요약하면 노동시간은 줄이고, 임금의 공정성과 유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여기에 청년고용 활성화, 사회안전망 확충, 정년연장 연착륙·통상임금 명확화·노동시간 단축 등 3대 현안 해결,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 등 4개 의제를 더한 것이 5대 의제다.

정작 9·15대타협 합의문을 보면 일부 의제에 한해 낮은 수준의 합의를 이룬 데 불과하다. 노동시간 단축의 단계별·순차적 시행일정과 고용보험 확대방안이 눈에 띄는 정도다. 그밖에 민감한 쟁점과제 중 국회에 계류 중인 5개 법 개정안에 반영된 것은 경영계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예컨대 비정규직 관련 입법에서 파견근로 대상 확대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 반영된 반면 노조 요구사항인 차별시정 신청 주체의 확대는 빠졌다. 특히 집단적 노사관계라는 수단, 즉 단체교섭권과 교섭의무의 확장, 비조직 부문의 대표성 강화 등은 아예 장기과제로 접어버렸다.

노사정위의 노사 대표, 정부와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 즉 남을 위해서 기득권층과 치열하게 싸울 인센티브가 없는 것이다. 좋은 방법은 취약계층이 스스로 단결해서 권리를 쟁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노동개혁 방향도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미 연방정부는 최근 파견근로자 등에 대해 사용사업자, 또는 원청업체에 ‘공동사용자’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양자간 교섭의무를 지우는 결정을 내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단체교섭권 쟁취를 위해서라면 “노동자와 함께 피켓라인에 서겠다”고까지 말했다.

애당초 한쪽으로 기운 협상이었다. 아쉬울 게 없는 경영계는 주요 의제에서 대타협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경영계와 정부는 핵심의제에서 구체적 합의를 피하고,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 2대 지침, 파견근로 확대 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반면 대표성이 부족한 한국노총은 노동계 요구를 밀어붙일 힘이 없다. 문제는 정부의 편향성이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나라에서 노동3권의 신장방안 없이 노동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판세가 사용자 측으로 크게 기울었음을 드러낸다.

개혁을 하겠다는 고위 공무원들 마음에 견제와 균형의 정신이 사라졌다. 지금 정부는 누가 봐도 힘이 더 센 재벌과 경영계 편이 아닌가. 청년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는가. 그렇다면 개혁에 앞서 있는 법이라도 잘 지켜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인권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노동시간, 중대 산업재해 발생률, 체불임금 등이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법정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반면 최저임금 위반 적발건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적어도 노동시간, 체불임금 및 부당노동행위 관련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적발 가능성을 높이고, 제재가 기업에 심각한 비용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업들이 법을 지키면 노동시장 양극화는 상당부분 개선된다. 고용노동부는 일반해고 지침만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엄격한 부당노동행위 판별 지침을 만들고 사법부와의 협력을 통해 처벌을 강화해야 마땅하다.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행위는 헌법을 유린하는 중대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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