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제네시스의 미래… 탄탄대로 렉서스냐, 자갈길 페이톤이냐

최고급 세단 G90 하반기 美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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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최고급 대형세단 G90(한국명 EQ900)를 올 하반기 미국 시장에 공식 출시한다. G90의 성공여부에 따라 제네시스는 ‘제2의 렉서스’로 성공가도를 달릴지, 아니면 ‘비싼 현대차’에 그칠지가 결정된다.

도요타 닛산 푸조 등 전 세계 양산차 업체들이 고급 브랜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로 성공했다는 평가는 도요타 렉서스가 거의 유일하다. 양산차 업체가 고급차를 제작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이 그 차를 고급차로 인정하고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다.

◇고급 브랜드의 조건=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남다른 기술력과 차별화된 이미지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안전성, BMW의 주행성능, 렉서스의 정숙성과 같은 다른 업체들이 범접하기 힘든 최고의 기술을 인정받아야 하고, 기꺼이 지갑을 열만한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춰야 한다.

자동차 충돌테스트를 처음 개발해 적용한 벤츠, 최초의 자동차용 알루미늄 V8엔진을 개발하고 남다른 주행 기술을 확보한 BMW, 요즘 배기가스 문제로 곤욕을 치르지만 혁신적인 디젤 엔진이었던 직분사 터보 디젤 엔진(TDI)을 개발한 아우디, 고장과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 렉서스 등 프리미엄 자동차업체들은 자신만의 기술력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3사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거나 100년에 가깝다. 가장 먼저 자동차를 만들었고, 가장 앞선 기술들을 개발해온 역사와 기술력이 이들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었다. 전 세계 고급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850만대 정도로 추정된다. 벤츠 BMW 아우디 독일 3사는 지난해 585만대를 판매했다. 전 세계 고급차 시장의 68%에 달한다. 렉서스, 인피니티 등 일본 고급 브랜드들이 10% 정도를, 나머지를 미국 업체들과 유럽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다.

◇렉서스와 페이톤의 교훈=도요타 렉서스는 단기간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창출했다. 렉서스가 1989년 미국에 ‘LS400’를 출시하며 들인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요타는 ‘LS400’ 출시 이전인 1985년 도요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20명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부유층 거주지인 라구나 비치에 1년 동안 파견했다. 미국 부유층의 생활을 1년간 직접 체험하라는 유급 휴가였다. 렉서스는 이런 노력 끝에 ‘자수성가한 연소득 10만 달러인 43세 남성’을 판매 타깃으로 설정했고, 베버리힐스 등 미국 부유층이 거주하는 곳에 렉서스 독자 대리점을 개설하며 럭셔리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했다. 도요타는 렉서스 출범에 50억 달러(6조3000억원) 이상을 투입했고, 출시 10년 만에야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폭스바겐은 2002년 최고급 대형세단인 ‘페이톤(Phaeton)’을 선보였다. 양산차 업체였던 폭스바겐이 ‘우리도 최고 럭셔리 세단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며 최고의 기술력을 쏟아부어 제작한 작품이었다. 최고급 모델에는 6.0ℓ 12기통(최대출력 450마력) 엔진까지 장착됐고, 수작업으로 하루 30대만 한정 생산됐다. 하지만 페이톤은 미국시장 출시 후 2006년 철수할 때까지 4년간 2753대 판매에 그쳤다. 소비자들은 양산차 업체였던 폭스바겐이 만든 럭셔리 세단을 ‘비싼 폭스바겐’이라고 생각해 지갑을 열지 않았다. 폭스바겐은 올 상반기 페이톤 생산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2세대 제네시스의 성공=현대차의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결정에는 기존 2세대 제네시스의 미국시장 성공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자동차시장은 양산차와 럭셔리(프리미엄)차로 구분된다. 통계도 따로 집계된다. 양산차는 주로 현대·기아차 GM 포드 도요타 폭스바겐 등이 경쟁하는 시장이다. 럭셔리차는 독일 3사, 포르쉐, 렉서스, 캐딜락, 재규어 등의 무대다. 이러한 차급 구분은 데이터를 집계하는 회사나 업체별로 조금씩 다르다. 같은 크기의 세단이라도 대중차와 럭셔리차를 구분하고, 럭셔리차급도 세단과 SUV 등으로 구분한다.

JD파워나 오토데이터 등 미국의 유력 조사·평가기관들은 현대차 제네시스를 럭셔리 차급으로 분류한다. 일부 기관들은 제네시스를 가장 큰 대중차인 ‘대형차(Large Car)’로 분류하지만 소수다. 오토데이타 자료에 따르면 제네시스는 지난해 미국 ‘미드(Mid) 럭셔리 세단’ 분야에서 판매량 3위(2만4917대)에 올랐다. 압도적인 1,2위는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와 BMW의 5시리즈였다. 제네시스가 미국 럭셔리 차급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실적이다.

◇G90의 경쟁력은 가격과 성능=기존 제네시스의 성공이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에 진출하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차인 G90는 ‘토탈 프리미엄 럭셔리 세단’ 차급에서 고급차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모델(최상위 모델)들과 겨뤄야 한다.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 A8, 렉서스 LS, 포르쉐 파나메라, 재규어 XJ 등이다.

현대차는 렉서스와 페이톤의 중간노선을 선택했다. 렉서스처럼 엄청난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기존 현대차 판매 조직을 이용하면서 순차적으로 제네시스만의 독자 판매 조직과 이미지를 구축해나갈 방침이다. 페이톤처럼 1개 차종만 선보이는 게 아니라 2020년까지 6개 차종을 출시하면서 라인업을 구축하겠다는 장기 전략이다. 현대차는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G90와 G80(2세대 제네시스)를 미국 시장에서 연간 각 5000대, 2만5000대씩 총 3만대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스포츠 세단과 쿠페, 대형·중형 SUV까지 6종의 라인업이 완성되는 2020년에는 제네시스 브랜드만으로 연간 10만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다. 제네시스 브랜드로 10만대 판매를 돌파할 수 있다면 제네시스는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렉서스는 미국 출시 2년 만에 미국에 가장 많이 팔린 럭셔리차가 됐고, 10만대 판매를 넘긴 것은 미국 출시 4년 만인 1992년이었다.

G90가 ‘현대차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차’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G90 등 제네시스 브랜드는 ‘합리적인 가격’과 ‘버금가는 성능과 뛰어난 편의성’이라는 두 가지 무기로 글로벌 고급 브랜드들과 경쟁할 듯하다. 하지만 아직 제네시스만의 독보적인 기술이 없고, 렉서스처럼 대규모 마케팅에 쓸 자금도 부족하다는 게 현실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현대차 측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21일 “현대차가 미국에서 10만 마일 보증을 선언했을 때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우리는 성공했다”며 “G90의 제품 경쟁력은 충분한 만큼 제네시스 브랜드를 안착시키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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