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준엽] 파괴적 혁신에 예외는 없다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열리고 있던 지난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있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런 곳에 연 이틀 비가 내렸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1년에 300일 이상 쾌청한 날씨라고 자랑한다. 이곳에서 비는 흔치 않은 일이다. 주변에선 이날만큼은 카지노에서 ‘대박’을 노려보겠다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대부분 일치한다. 한 미국인은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라스베이거스는 후버댐 등 인근에서 물을 끌어다 쓴다. 비 오는 게 수지맞는 장사라는 얘기다.

비가 오면 유독 바빠지는 직업이 있다. 바로 택시기사들이다. 비를 피해 이동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 오는 라스베이거스 거리에서 택시기사들은 행복하지 않다.

우버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 호텔과 전시장 곳곳에서 우버와 리프트 이용 안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차량이 바삐 움직이면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IT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운송서비스가 수십년을 이어온 택시산업의 목줄을 조여 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라스베이거스는 우버의 진입을 막아 왔다. 택시산업 보호가 이유였다. 하지만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계속 막을 수는 없었고, 네바다주는 지난해 7월부터 우버 영업을 허용했다. “우버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해졌다”는 택시기사들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우버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최근 대형 택시회사 ‘샌프란시스코 옐로캡 협동조합’이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택시 업체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IT업계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생업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CES에 다녀온 후 지인들로부터 “보고 무엇을 느꼈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가장 많이 듣고 마음에 새겼던 단어는 ‘디스럽션(disruption)’이었다. 한글로 번역하면 파괴, 분열, 붕괴쯤 되는 의미일 것이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도 애용되는 말이었다.

기존 산업의 파괴 내지는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버가 택시 산업을 붕괴시킨 것처럼 과거에는 칸막이가 명확했던 산업이 새로운 기술로 인해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율운행 자동차는 자동차업체가 아닌 IT업체인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을 중심으로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다. 드론에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사람이 찍을 수 없는 사진을 담아내고 있고, 3D프린터는 저렴한 비용으로 개인이 직접 맞춤형 생산을 가능케 해 대량생산이라는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놓고 있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는 CES 기간 중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30개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를 권역으로 하는 첫 번째 방송 서비스의 출현이다. 국가 내지 지역 단위를 기반으로 하던 방송 서비스는 넷플릭스의 세계화 정책으로 큰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콘텐츠 업체 입장에선 글로벌 진출이라는 기회가 생긴 것과 동시에 고품질의 글로벌 콘텐츠와 국내 시장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늘 그렇듯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성을 가지게 된다.

영역을 불문하고 벌어지고 있는 파괴적 혁신은 나와 상관없는 일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대답은 “상관 있다”였다. 이미 스마트폰 등장 때 겪어 본 일이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세상에 모든 게 스마트폰으로 집중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스마트폰이 MP3, PMP, 내비게이션, 카메라 등 각종 IT기기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앱 생태계를 열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숙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삶을 사는 한 나와 상관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의 변화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게 될지 명확하게 규정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창조적 파괴가 남의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쯤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언제 내 발에 불이 옮겨 붙을지 모르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등장한 지 10년도 안 되는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삼킨 것처럼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파괴적 혁신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변화를 위해 새로운 시도에 나설지, 지금의 자리를 고수할지 선택만 남았다.

김준엽 산업부 기자 snoopy@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