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큰 나무를 그대로 두라 기사의 사진
한 어촌마을 동산에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동산 가운데에 있는 큰 감나무 처리 문제를 놓고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다. 수백 년 동안 주민들에게 여름이면 그늘이 되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는 바람막이가 되고, 가을이 되면 풍성하게 감을 선물로 줬던 감나무였다. 그런데 그 감나무가 나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고목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감나무에 감이 풍성히 맺힐 때 탐욕스럽게 많은 감을 따갔던 몇몇 사람은 나무를 찍어 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오랫동안 그늘과 바람막이가 되고 풍성한 열매를 줬던 감나무가 그대로 보존되기를 원했다. 비록 고목이 되어 가고 있지만 오랜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아름다움과 품격, 진중함이 좋았다. 또 예전 못지않게 지금도 그늘과 바람막이가 되고 감도 공급해 주는 나무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찍어 버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동네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나무 때문에 어획량이 줄고 마을이 잘 안 된다고 했다. 아무도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원대로 감나무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영웅이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각 분야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영웅들이 물러나면서 한국사회는 방향을 잃고 있다. 고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라진 정치권은 리더십 부재로 분열과 정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한국경제 역시 비전과 꿈을 가진 리더의 부재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현대를 세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창조적 리더십이 그립다. 우리는 선대들의 업적을 없애는 것이 차별화요 역사의 평가라는 착각에 빠져 소중한 많은 것을 잃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역사적 민주국가 건국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 유산 등이 역사 평가의 쏠림으로 빛을 잃었다. 우리는 선대들의 노력으로 빈곤으로부터 해방됐지만 열매를 따 먹은 후대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자유만 누리려는 이상한 풍조에 물들어 있다. 권위는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남았다. 선진국에서는 영웅들의 실수를 용인하고 그들이 남긴 업적을 소중한 유산으로 보존하는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악영향은 교회 안에서도 다르지 않다. 르호보암들이 너무나 많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정치적 선택의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세금을 줄이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라는 원로들의 말을 배척하고 젊은 친구들의 말을 따랐다가 나라를 둘로 갈라지게 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와 깊은 사유는 실종되고 즉흥적으로 이것저것 갖다 대는 짜깁기 논리와 설교가 넘쳐난다.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목회자로 잘 알려진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는 한국에 스스로 사유하는 신학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짜깁기하는 지식 플랜은 있으나 깊은 사유에서 나오는 맛있고 멋있는 신학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성은 맛이고 감성은 멋이라며 목회자는 이 둘을 잘 버무려 화(和)해야 한다고 했다. 몸은 하나요 지체는 여럿이지만, 지체가 갖고 있는 다양한 달란트를 하모니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일갈했다. 모든 것의 중심은 예수지만, 예수를 변방으로 밀어낸 중심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예수님이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과 처참하게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보신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영웅들의 유산을 잘 간직하고 그 유산을 네트워크화 하자. 예를 들면 경건과 검소의 삶을 실천한 고 한경직 목사, 성령운동으로 세계의 부흥을 이끌고 희망의 신학을 선포한 조용기 목사, 제자훈련으로 한국교회의 신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고 옥한흠 목사 등 이들의 영성을 세계교회에 널리 알려야 한다. 의학용어에 조골세포와 사골세포가 있다. 조골세포는 경골을 만드는 세포이고 사골세포는 뼈세포를 죽이는 세포이다. 우리는 조골세포가 되어야 한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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