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재훈] ‘후츠파’가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고교 동창생 하나가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한짐 덜었나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창업하겠다고 나선 지 벌써 2년도 넘었다는 것이다. 뭘 하고 다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어쩌다 생활비라도 타러 오면 “곧 대박이 터질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라”고만 하니 속이 터진다는 거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산업 자동화의 진전으로 새로운 일자리는 기존 산업보다 창업을 통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2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데 따르면(2002∼2011년) 창업 5년 이내의 기업이 기존 기업들보다 신규 고용을 주도했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에서 이제는 기업가적 대학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가적 마인드를 갖고 대학을 운영하고 연구 성과가 있으면 직접 사업도 한다. 교수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창업을 적극 권장하는 게 대세가 되었다.

필자 역시 학교 안에 ‘창업지원본부’를 두고 창업을 원하는 학생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반응은 뜨겁다. 상담이나 자문을 원하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창업을 통해 취업난도 해소하고, 미래의 성장동력 확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창업이 효과적으로 확산되려면 우선 아이디어나 기술을 평가해서 객관적으로 시장가치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하고, 그 평가에 기초해 벤처캐피털 등 다양한 금융시장이 상업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이 두 가지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기술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금융권의 지원도 담보가 있느냐와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느냐만 주로 따진다. 민간에서 투자금을 구하기도, 정부 지원금을 따내기도 쉽지 않다.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역시 녹록지 않다.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 정부가 설립한 지원 기관이 있음에도 대다수 창업 희망자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기술을 평가받고 투자처를 잡아야 하는지 깜깜해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패자부활전을 용인하지 않는 풍토가 지배적이다. 창업을 도모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다.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치고 시행착오를 안 겪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일단 실패하면 무능력자나 비즈니스 부적격자로 간주해버린다.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숱하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선 창업 성공신화가 나오기 어렵고 창업을 선뜻 권유하기도 어렵다. 그저 월급쟁이나 하라고 할밖에.

이스라엘에서는 대학생의 80∼90%가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이스라엘의 후츠파(chutzpah)정신을 꼽는다. 후츠파는 히브리어로 ‘뻔뻔스러움, 철면피’를 뜻한다. 아이디어와 신념만 있으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담대함, 바꿔 말하면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용인하는 전통과 문화 때문에 젊은이들이 거리낌 없이 창업에 나선다는 것이다.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모두 창업자가 대학 재학 중에 시작한 기업이다. 작년 가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거의 모든 대학이 제2, 제3의 마크 저커버그를 배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창업 지원에 나서고 있는 걸 보았다. 우리도 인프라는 그런대로 갖춘 셈이다. 대학은 이미 팔을 걷어붙였고, 정부도 대기업과의 상생을 통해 창업을 유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18개 거점별로 마련했다. 젊은이들이 창업에 겁 없이 뛰어들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일부 제도만 보완된다면 우리 대학에서도 곧 저커버그가 나오리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되면 내 친구의 아들 걱정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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