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부 잘하는 남학생일수록 ‘일베 홀릭’ 많아… 경기도교육연구원 보고서 내용 분석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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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것과 ‘일베 홀릭’이 무슨 관계일까 궁금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시대정신연구소와 함께 실시한 심층면접에서 한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은 “일베 게시판에서 정치에 대해 빈정거리며 공격하는 걸 즐거워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공부도 잘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1 남학생은 “선생님도 누가 일베인지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평소 우수한 학생들이 일베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가 25일 입수한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일베 현상’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남학생 또는 성적과 경제수준이 상위 학생일수록 일베에 대한 인지도나 공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일베 내용의 편향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또래집단의 은어처럼 일베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남학생·성적상위학생 ‘일베 홀릭’ 많아=심층면접과 함께 지난해 9월 71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일베 게시판 이용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1명꼴(9.2%)에 그쳤다.

하지만 일베에 대한 인지도는 90% 이상에 달했으며, ‘일베를 자세히 알고 있다’는 응답은 남학생(14.1%)이 여학생(4.2%)보다 월등히 많았다. 특히 성적 상위권의 경우 자세히 알고 있거나(20.9%), 대강은 알고 있다(53.5%)는 응답자 비중이 다른 집단보다 높았다. 친구들이 일베 용어를 과다 사용하는 것에 대해 ‘표현의 자유로 상관없다’는 의견도 남학생(19.1%)이 여학생(5.8%)보다 많았다. 성적 상위권(21.4%)과 경제수준이 높은 집단(29.3%)에서도 표현의 자유라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미디어에 노출이 덜 된 일베 용어의 경우 실제 사용경험이나 인터넷을 많이 접하는 남학생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연예인들이 사용해 논란이 된 여성비하 용어인 ‘김치녀’(90.6%)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인 ‘노무노무’(86.8%) 등과 달리 전두환 전 대통령을 칭송하는 의미로 일베에서 쓰이는 ‘땅크’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는 응답은 33.7%에 그쳤다. 그러나 남학생(55.0%)은 여학생(11.1%)보다 이 용어를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성적 상위권 학생(48.8%)과 경제수준 높은 경우(52.5%)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번씩 때려야 한다’는 말에서 유래한 ‘삼일한’이라는 용어 역시 남학생의 45.7%가 인지하고 있는 반면, 여학생은 16.8%에 그쳤다.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의 경우 인지도가 53.7%로 평균(31.5%)을 크게 웃돌았다.

남학생들 사이에선 일베 현상이 이미 또래문화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확인됐다. 심층면접에서 고1 남학생은 “자신이 일베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걸 꺼리지만 교실 뒤에선 광주가 폭동이냐 민주화운동이냐를 놓고 키득거리거나 ‘이 자식 종북이네’라고 말하는 게 교실 풍경”이라고 했다. 이 학생은 또 “술·담배를 하면 어른스럽게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 불신을 얘기하거나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세련되고 앞선 의식이라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일베 용어를 사용하다 부모님(2.3%)이나 선생님(9.2%)에게 제재를 받은 경험은 각각 2.3%와 9.2%에 그쳐 어른 앞에선 일베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교사들 “단순 호기심에 일베 접속”=심층면접에 참여한 교사 4명은 일베의 정치적 편향성이나 반사회성이 어린 학생들의 잘못된 가치관 형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일베 방문은 많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 일베에 접속하는 학생들 역시 단순 호기심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20대 여교사는 “(일베 현상은) 그 나이 또래 나타나는 반항심리에 따른 특이현상이라 본다”고 했다.

심층면접에 응한 전문가들은 10대들의 일베 현상이 극단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전문가는 “일베에선 여성들을 타고난 신체와 외모로만 높은 지위를 얻는다고 비하하고, 또 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이런 부정적 사고가 남학생들에게 전염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일베 현상이 유행하는 것은 센 척하는 ‘허세’가 반영된 결과로 일종의 소극적 청소년 비행”이라고 진단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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