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준협] ‘87년 체제’에서 탈피해야 기사의 사진
5대 노동개혁 법안과 2대 지침으로 촉발된 노사정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나라경제와 국민의 살림살이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노사정은 한 치 양보도 없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으며 도무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그 원인이 적대적 노사관계에 기초한 ‘87년 체제’에 있다고 감히 주장한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7∼9월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과 함께 노동조합 설립이 줄을 이었다.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전투적 노조가 대세를 이루었고 대립적 노사관계가 형성되었다. 노사관계에서도 ‘87년 체제’가 수립된 것이다. 87년 체제 초기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사용자만 있던 세상에 노동자가 탄생하면서 반쪽이 아닌 ‘정상적’인 노사관계가 등장했고, 눌려 있던 임금이 상승하고 고용이 안정되면서 노동자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내수시장도 커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대립적 노사관계가 심화되고 고용·임금의 경직성이 커지자 기업들은 핵심 업무에만 정규직을 채용하고 비핵심 업무는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87년 체제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자 내에서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강성 노조를 가진 10%의 대기업·정규직 근로자는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이 높은 반면 강성 노조가 없는 90%의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양극화는 기업 성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상위 10% 근로자는 열심히 일할 유인이 적어 기업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위 90% 근로자는 고용불안과 저임금 때문에 자신의 창조성과 혁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87년 체제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확대하고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고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까지 훼손하는 형국이다. 이제는 적대적 노사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87년 체제에서 탈피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가 더 좋은 제품·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한 혁신 활동에 참여하고 더 커진 기업의 파이를 노사가 공유하는 협력적 노사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과 나라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의 삶의 질도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유연성과 안정성이 조화를 이루는 유연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연성만 강조하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근로자의 창의성을 끌어낼 수 없고, 안정성만 추구해도 열심히 일할 유인이 줄어든다. 강성 노조를 가진 10%의 대기업·정규직 근로자는 이미 안정성이 높은 수준이기에 유연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강성 노조가 없는 90%의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는 이미 유연성이 과도하기에 안정성을 강화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5대 노동개혁 법안과 2대 지침은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확대하는 안정성 강화 대책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간제와 파견근로자를 확대하고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유연성 강화 대책이 대부분을 차지해 균형감을 잃은 듯하다. 5대 법안과 2대 지침이 근로자의 혁신 활동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며, 오히려 비정규직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가계소득 정체와 소비 부진으로 이어질 우려마저 존재한다. 또한 정부가 이를 강행함으로써 협력적 노사관계 형성을 점점 더 어렵게 하는 측면도 지적될 필요가 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노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이고, 근로자의 왕성한 혁신 활동을 이끌어내 기업 성과를 높이고 노사가 상생하는 해법을 찾기를 소망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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