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명칭도 가지가지, 1년 내내 쭈∼욱… 대한민국은 ‘세일 공화국’

[경제 히스토리] 명칭도 가지가지, 1년 내내 쭈∼욱… 대한민국은 ‘세일 공화국’ 기사의 사진
‘백화점에서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말은 1980년대에도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당시 신문에는 백화점의 잦은 세일 및 변칙 세일을 지적하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급기야 ‘사기세일’ 논란까지 터지면서 백화점 및 세일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사건도 있었다. 한 세대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백화점에서 제값 주고 사면 손해라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기세일, 브랜드세일, 출장세일 등 백화점 자체 행사에 더해 지난해에는 코리아 그랜드세일, K세일데이 등 대규모 세일 이벤트가 추가되면서 ‘세일 피로감’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도 연초부터 K세일데이 정례화가 추진되는 등 내수활성화 카드로 세일이 남발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세일’ 규제에서 자율로=국내에 ‘세일(SALE)’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부터다. 삼성에 인수된 동화백화점이 신세계백화점으로 명칭을 바꾼 후, 1967년 10월 국내 백화점 처음으로 6일간 ‘바겐세일’을 실시하면서 세일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졌다. 그 전에도 양품점 등에서 세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대매출’ 등의 할인 행사를 진행했지만 백화점에서 세일을 정례화하면서 세일 붐이 확산됐다.

세일이 보편화면서 ‘대바겐세일’ ‘파격세일’ ‘반액세일’ 등 각종 행사들이 백화점 및 상가 등에서 난립했고, 세일 기간 역시 길어졌다. 이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세일 기간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결국 1981년부터 백화점 및 대형유통업체에서 전체 규모의 세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을 연 4회(1회당 10일 이내)로 제한하고, 1983년에는 연 90일 이내 범위에서 횟수와 기간에 관계 없이 자율적으로 실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성장세에 접어든 백화점 간의 과열 경쟁이 더해지며 ‘연중세일’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1987년 대한주부클럽연합회(현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조사 결과 현대백화점(318일), 롯데백화점(316일), 신세계백화점(273일) 등 주요 백화점의 전년 세일 일수가 200일을 넘긴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기세일 외에 ‘염가 판매’ 등 각종 명목을 붙여 변칙 세일을 연중 시행했다는 것이다.

1989년 1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10개 백화점 사업자에 대해 허위로 할인율을 높게 책정해 판매했다며 시정명령을 내린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소비자 불신이 극에 달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백화점을 사기죄로 고발하면서 이 문제가 법정으로까지 가게 됐다. 형사사건과 별도로 52명의 피해자를 모아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1993년 9월 민사소송에서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고 1994년 12월 형사소송 역시 백화점 관련자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사기세일 논란은 백화점 세일 규제에도 영향을 줘 1989년 5월부터 세일 기간이 60일 이내(1회당 15일 이내)로 다시 축소됐다. 백화점협회에선 사기세일 논란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자체적으로 세일 기간을 20일 더 줄이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여론에 따라 늘렸다 줄였다를 반복해온 세일 기간 제한은 1997년 4월 들어 완전히 사라졌다. 대형마트와 아울렛 등의 확산으로 유통 환경이 달라진데다 유통시장 개방 등을 감안해 정부가 세일 기간 제한 규정을 없앴다. 세일 이후 20일 간 다시 세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 ‘할인특매 고시’ 역시 이듬해 12월 폐지돼 세일 횟수와 일수에 대한 정부 규제는 사실상 사라졌다.

세일 효과 고민할 때=세일 일수를 백화점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됐지만 2013년까지 주요 백화점 3사의 정기세일 일수 및 기간은 같은 흐름을 보였다. 세일 일수가 동일하게 증가했을 뿐 아니라 정기세일 시기도 1·4·7·10·12월로 고정돼있어 백화점 마다 세일의 시작과 끝이 동일했다. 그러다가 2014년 신세계백화점이 정기세일을 줄이면서 지난해 3사의 정기세일 일수는 모두 감소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세일 일수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백화점은 정기세일 외에 브랜드 세일, 대관행사, 해외명품 대전 등 각종 행사를 세일 일수에 포함시키지 않는 반면 소비자는 해당 행사들도 세일이라고 느낀다. 브랜드에 따라 세일 시작 전 세일가로 판매하고, 직원할인 등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내수 진작을 위해 코리아 그랜드 세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K세일데이 등 국가차원의 대규모 이벤트가 잇따르면서 세일이 너무 잦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진행된 지난해 10월 백화점업계 매출이 두 자릿수 이상 증가하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잦은 세일이 가격에 대한 불신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소비자들이 세일에 따른 가격 하락을 당연시하면서 정가에 물건을 구입하지 않고 세일을 기다리거나 더 큰 폭의 세일에만 반응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가진 온라인 유통 채널의 확대, 보다 싼 가격을 찾는 해외 직구의 일반화 등 유통 채널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백화점 세일에 대한 주목도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백화점 역시 잦은 세일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어 세일이 증가 추세로 다시 전환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여름 세일을 한달간 진행했지만 세일 기간 동안 생각만큼의 매출 증대 효과는 없었다”며 “백화점도 과거와 같이 무작정 세일 일수를 늘리는 방식 외에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세일 역시 보다 면밀한 효과 분석이 이뤄진 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19일 ‘2016년 국내 경제 진단’ 보고서에서 “정책효과가 마중물 역할을 해서 소비와 생산, 고용회복의 선순환 흐름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가계의 소비심리 회복이 중요한데 올해에도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일 당시에는 매출이 늘었더라도 이후에 매출이 줄어 ‘제로섬’이 될 수 있는 건 아닌지, 세일에 참여하는 제조사에 미치는 부작용은 없는 것인지 경제 주체별로 파급효과를 보다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경제 히스토리 모두보기]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