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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뷰-박상은] 종교개혁과 평신도

교회에서 모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형제요 자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종교개혁 500주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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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자신을 돌아보며 참회와 반성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제가 이해하는 종교개혁의 중심사상은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 생각됩니다. 성경말씀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져 누구라도 읽고 주님과 소통하는 제사장적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만인은 평등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교회를 사고파는 매매가 이루어지고, 성직도 다분히 거래되는 현실입니다.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을 강조하며 이것이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이라며 이를 성도들 간에 비교하고 경쟁시키는 경우도 허다히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돼 있는 교회의 신분체계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담임목사 중심의 교회 운영은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리더가 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성직자도 있으며 직분의 호칭을 마치 신분의 높낮이로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성씨 뒤에 직급에 해당하는 호칭을 부르다 보니 회사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장, 부장과 같은 직급을 부르지만 교회에 와서는 장로, 권사, 집사 호칭을 마치 계급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도 마치 교회의 계급에 목사-부목사-장로-권사-안수집사-집사 등의 직분이 서열인 것처럼 이해하며, 성도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장로와 권사가 되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다하는 행태를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형제요, 자매이며 직분은 높낮이가 아니라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세로 겸손히 임하는 것이 옳은 마음가짐이라 여겨집니다.

선교사로 파송을 받는 과정에서도 목사가 아닌 경우 평신도로서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정식으로 파송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정한 선교훈련을 마치고 파송되는 지역의 필요에 부합되면 성직자나 평신도나 모두 선교사로서 인정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130년 전 조선을 찾은 선교사들은 이 둘의 구분 없이 아름다운 동역을 한 역사를 보며 한층 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의료선교사, 교육선교사, 기술선교사 등 복음과 함께 우리가 가진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여 전도하고 이웃을 섬기는 다양한 평신도 선교사가 많이 배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상의 삶은 세속적이고 교회의 삶은 거룩하다는 이원론적인 신앙을 가지기 십상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만이 예배가 아니라 우리 삶의 영역 어디에서라도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가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주일보다 6일간의 교회 밖 세상의 삶이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야 할 치열한 영적 전쟁터일 수 있으며, 교회의 찬양시간 못지않게 직장에서 정의롭게 사랑을 실천하며 쾌락에 휩싸인 회식문화를 바로잡는 사역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심방 다녀오는 길에 낙태시술을 받는 집사가 있는가 하면, 기업에서 회계부정을 저지르는 비율에 있어 기독교인이 결코 적지 않으며, 자살과 불륜이나 이혼에 있어서도 통계적 유의함이 발견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중세시대 면죄부를 팔며 돈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민중을 현혹시킨 것처럼 오늘날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평형수가 실려야 할 공간에 돈을 벌기 위한 컨테이너가 쌓여 배는 평형을 잃어버리고 300명의 생명은 물속에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안전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칭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공부한 신앙과 그들의 삶은 너무도 상이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장로님을 면회하러 교도소에 간 적이 있는데, “장로님”이라고 불렀더니 동시에 여러 명이 저를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마다 행여 목사, 장로가 주인공일까 봐 조마조마합니다.

문제는 형식이나 껍데기가 아니라 실제 내면의 문제일 것입니다. 다시금 말씀으로 돌아가며,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임을 재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저부터라도 이제는 비본질적인 것을 내려놓고 정말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상은 샘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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