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명예 살인’에는 명예가 없다 기사의 사진
아프가니스탄에서 ‘명예 살인’을 피해 사랑의 도주를 한 알리와 자키아의 실화를 담은 ‘연인들: 아프가니스탄의 로미오와 줄리엣’ 책 표지(왼쪽 사진). 오른쪽은 두 사람이 2014년 은신처 근처를 거니는 모습. 뉴욕타임스
2014년 초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아프가니스탄 특파원이던 로드 노들랜드는 중부 아프가니스탄에 위치한 힌두쿠시 산맥의 바미얀에서 이른바 ‘명예 살인(Honor Killing)’이 진행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명예 살인’은 집안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주로 남성 가족이 여성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관습으로 주로 이슬람권에서 행해진다.

바미얀 읍내의 ‘여성 쉼터’에서 그는 자키아(당시 18세)를 만났다. 남자친구 알리(당시 21세)는 가족의 보호 속에 은둔해 있었다. 자키아의 부친과 남자형제, 사촌들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알리와 결혼하려는 자키아를 살해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알리와 자키아는 황량하고 거친 이 고원지대의 농촌 마을에서 함께 자랐다. 어느 순간 서로 눈길을 주고받게 됐지만 종교와 인종, 민족의 벽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알리는 아시아계인 하자라인인 반면 자키아는 백인인 타지키스탄인이었다. 또 같은 무슬림이지만 알리는 소수파인 시아파, 자키아는 수니파였다.

두 사람의 사이를 알아챈 자키아의 부모가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려 하자 자키아는 이를 거부했다. 살해 위험에 처한 그녀를 구한 것은 남편이나 형제들의 구타, 강제결혼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설립된 ‘여성 쉼터’였다. 같은 해 3월 9일 NYT에 ‘죽음을 무릅쓴 두 불운한 아프간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사연이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전 세계의 관심이 이들에게 쏟아졌다.

이후 자키아는 가족들에게 위치가 노출된 쉼터를 탈출해 알리와 함께 도망쳤다. 노들랜드 기자는 이들 연인의 도주와 고난, 그리고 운명적인 결혼을 다룬 후속 기사를 5∼6차례 실었다. 자키아는 아프간에서 전통과 악습에 저항한 용기 있는 여성의 상징이 됐다. 최근 노들랜드 기자는 이 실화를 ‘연인들: 아프가니스탄의 로미오와 줄리엣(The Lovers: Afghanistan’s Romeo And Juliet)’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책 출간을 계기로 아프간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명예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성행하는 여성 인권 말살행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미국 공영라디오(NPR)의 간판 대담프로인 ‘다이앤 렘 쇼’ 등에서 ‘명예 살인’이라는 용어의 부적절함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명예 살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때마다 사람들은 피해자인 여성보다 살해자인 남성의 시각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안으로 ‘수치 살인(Shame Killing)’, ‘가부장제 살인(Patriarchal Killing)’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된다는 점에서 ‘여성 살해(페미사이드·Femicide)’가 적당한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국제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매년 5000명의 여성이 명예 살인이라는 명목 아래 살해되고 있다.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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