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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학생에게 ‘희망’을 빌려줍니다… 한양대생들 ‘키다리은행’ 운영

협동조합 형태로 출자금 모아 학생들끼리 기금 운영 첫 시도

학생이 학생에게 ‘희망’을 빌려줍니다… 한양대생들 ‘키다리은행’ 운영 기사의 사진
은행장 한하원씨(왼쪽)와 기금운용 책임자 신승준씨(오른쪽) 등 키다리은행 운영진이 30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키다리은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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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생 A씨(23)는 지난해 12월 학교가 운영하는 해외기업 탐방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했다. 2주 정도 아르바이트를 중단해야 하지만 취업에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 선택했다. 그런데 자취방 월세 35만원이 발목을 잡았다. 2주간 중단 후 곧바로 알바를 재개한다 해도 납부일에 맞춰 월세를 마련하기란 불가능했다.

온갖 궁리 끝에 교내 ‘키다리은행’을 떠올렸다. 한양대생들이 만든 일종의 ‘금융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인 학생들이 출연금을 모아 돈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빌려준다. A씨는 대출심사팀 학생을 만나 대출이 필요한 이유와 상환 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30만원을 빌려 월세를 해결했다. 담보 같은 건 필요 없었고, 이자는 “형편이 되면 내고 아니면 원금만 갚으라”는 식이었다.

해외기업 탐방을 마친 A씨는 알바로 돈을 모아 3월에 대출금을 갚을 계획이다. 그는 “팍팍한 세상에서 희망을 본 듯하다. 다른 학생도 도움을 받도록 2만원이나 3만원을 이자로 보태 상환할 생각”이라고 했다.

같은 학교 B씨(25)는 다가오는 여자친구 생일이 걱정이었다. 알바로 번 돈에서 월세를 내고 나면 항상 주머니 사정이 빠듯하다. 겨울방학에 기업 인턴을 시작해 다음 달 월급을 받지만 그 사이엔 돈을 마련할 뾰족한 수가 없다. B씨도 키다리은행에서 20만원을 빌렸다. 그는 “멋진 생일선물을 하고 남은 돈은 생활비로 쓰고 있다. 전혀 위축되지 않고 돈을 빌릴 수 있어 든든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믿음과 자율로 ‘희망’을 빌려주는 은행이 대학에 등장했다. 대학생들이 출자금을 내서 운영하며 은행장도, 대출심사자도, 돈을 빌리려는 사람도 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다.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은행을 만든 것일까.

지난해 10월 한양대 서울캠퍼스에 색다른 대자보가 붙었다. 제목은 ‘선후배님들께 가난을 호소합니다’. 필자는 ‘헬조선’이라는 표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현실을 아파하며 “각박한 현실에 사회의 방어막이 없다. 여기에 ‘우리의 펜스’를 치자”고 제안했다. 그 ‘펜스’가 바로 키다리은행이다.

금융협동조합이란 취지에 공감한 학생들이 하나둘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재학생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가입비 1만원과 각자 형편에 맞게 출자금을 내면 된다. 현재 40여명이 조합원으로 등록돼 있다. 모인 출자금은 240만원 정도.

지난해 11월 설립총회를 열었다. 조합원 투표로 은행장과 이사를 뽑았다. 출자금으로 생활비가 필요한 학생에게 돈을 빌려주는 ‘숏다리펀드’라는 상품을 만들었다. 숏다리펀드는 최대 30만원을 6개월간 빌려준다. 아직 대출 신청은 조합원만 가능하다. 이자는 ‘자율’이다. 그냥 원금만 갚아도 되고, 이자 명목으로 조금 더 보태 갚아도 된다. 수익보다는 되돌아오는 신뢰와 믿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청년들에게 생활비를 대출해주는 협동조합은 이미 있는데, 학생들끼리 조합을 만들고 기금을 운영하는 시도는 처음이다. 막 첫걸음을 뗀 키다리은행은 4명에게 대출을 해줬다. 첫 대출자는 30만원을 빌려가 32만원을 갚았다고 한다.

은행장인 한하원(23·여·국제학부 4학년)씨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시기에 돈이 조금 없다고 가난을 강요당한다.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미스매치’를 서로의 도움으로 메우고 싶다”고 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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