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영국 여왕도 반한 안동한지, 대만 진출합니다”

국내 최대 전통한지 생산업체 ‘안동한지’ 가보니

“영국 여왕도 반한 안동한지, 대만 진출합니다” 기사의 사진
국내 최대 전통한지 생산업체인 안동한지의 이영걸 회장(왼쪽)과 이병섭 대표가 순백색 한지를 펼쳐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한지의 세계화’다. 1000년 이상 가는 우리 종이의 우수성을 지구촌 곳곳에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맞춰 행정자치부는 3월 1일부터 정부 훈·포장 용지를 전통한지로 사용하기로 했다. 국내 최대 전통한지 생산업체인 경북 안동시 풍산읍 안동한지를 지난달 25일 찾았다. 한지는 전북 전주가 유명하지만 전통한지는 안동한지가 최고다.

이영걸(74) 안동한지 회장은 닥나무 껍질을 벗긴 재료를 말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20대 시절 전주에서 한지 만드는 일을 배운 이 회장은 1988년 안동에 공장을 차렸다. 이곳에 고서적을 출간하는 종가와 서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산 닥나무를 쓰고 전통방식으로 제작하는 안동한지는 질기고 보풀이 적어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전국 화방이나 동양화가 등이 애용하고 있다.

전통한지는 숙련된 기술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닥나무를 가마솥에 넣어 10시간 정도 삶아서 벗긴 후 말린다. 이를 물속에 넣고 불린 후 칼로 표피(흑피)를 제거한 다음 백닥을 만든다. 잿물을 백닥에 넣어 삶아 풀어지게 한 다음 발뜨기를 한다. 물을 뺀 종이는 한 장씩 떼어 열판에 붙여서 건조시킨다. 이런 과정을 거쳐 화선지, 창호지, 벽지, 배접지, 장판지 등이 만들어진다.

안동한지 공장에는 34년 경력의 김재식 장인 등 10여명이 단계별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30년가량 경력을 가진 안승탁 공장장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한지를 되살려 해외에 ‘한지한류’를 전파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한지는 한때 연간 15억원의 판매고를 올린 적도 있으나 지금은 기계로 대량 제작되는 한지 등에 밀려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안동한지는 국보 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복원용 한지를 납품하고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행사장 도배를 장식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했을 때 이곳에 들러 전통한지 제작 과정을 둘러보고 선물용으로 사가기도 했다. 이 회장은 “요즘도 외국 대사나 영사들이 수시로 찾아와 8000년 이상 끄떡없는 안동한지의 품질에 놀란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말 정부가 추진한 전통한지 재현사업 경연에는 전국 11개 업체가 참여했다. 조선시대 정조 친필 편지를 복원해 밀도·내절도·투기도 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안동한지가 1위를 차지했다.

고시공부를 하다 부친과 함께 안동한지를 운영하는 이병섭(50) 대표는 “전통산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 고유의 멋과 얼이 스며 있는 순(純)한지 생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곳의 한지 체험관이 인기다. 공장견학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오전 9시∼오후 6시) 무료로 할 수 있다. 안동뿐 아니라 대구와 서울에서도 학생 단체관람이 줄을 잇는다. 한지를 직접 만들어보고 오색 공예품과 채색판화를 제작하는 코너도 하루에 100여명이 몰려든다. 참가자에게는 한석봉의 천자문이 인쇄된 한지를 선물한다. 한지의 대중화를 위해 가끔 여는 한지 패션쇼도 빈자리가 없다.

전통이 살아 숨쉬고 학습의 장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안동한지는 문화관광 명소로 발돋움했다.

이와 함께 대만 타이베이의 공자묘에서 서예체험을 할 수 있도록 최근 협력을 맺었다. 해외로 나아가는 전통한지의 첫 발걸음이다. 이 회장은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과 미주에도 우리 한지를 선보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안동=글·사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