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처음으로 하나님께 올리는 편지 기사의 사진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 만날 저는 입으로 수없이 부르면서 막상 이리 편지를 쓰려니 무척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는 설 연휴를 맞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요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 사정 하나님도 아실 겁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까. 부자나라의 아버지도 되고 가난한 나라의 아버지도 되신단 말씀입니까. 생각, 풍속, 모양도 다른 그런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느냐 말씀입니다. 이 땅 위의 사람 아버지도 아비 노릇 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보통 힘든 게 아닐 것입니다.

요 몇 해 참 괴로운 일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게 된 것부터가 참으로 무섭습니다. 며칠 전에는 부천 여중생 미라 사건을 접하며 악령이 이 땅을 지배하지 않나 할 정도로 공포스러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는 오늘도 서울 낙산 성곽길을 산책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성돌 틈에 소담했던 민들레는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거기 조그맣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시며 그 조그만 꽃처럼 착한 하나님이 되실 겁니다. 그런데 옛날에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참 많은 사람을 죽게 하신 하나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서운 하나님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몰아내고 무자비한 지배자로 군림했던 스페인과 영국은 자신들이 참 위대했다고 가르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듯 그들 또한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됐다고 큰소리 칩니다. 하나님은 늘 이기는 편, 힘 센 쪽의 하나님이신가요. 힘없고 볼품없는 이들이 가엾지 않으신가요. 아비의 손에 죽은 여중생을 구원해 주실 건가요.

아버지 하나님. 당신의 외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하나님, 하나님 나를 버리시옵니까”라고 애절하게 부르시던 것 들으셨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약한 이들은 폭력에 의해 죽어가면서 하나님을 슬프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죽이는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하나님 뜻이라고 말하지요. 이래도 좋은 겁니까.

지난해 9월 저는 죽음을 피해 시리아를 탈출한 그 나라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그리스의 한국인 선교사 부부가 도상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대신하며 그들에게 구호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해안의 무참한 주검 ‘세 살 쿠르디’ 가족이 닿고자 했던 피난처 레스보스섬의 비극도 생생히 확인했습니다. 그곳에는 벨기에 등에서 휴가내고 나온 간호사들이 난민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왜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 불구가 된 이들, 이유 없이 갇힌 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만 계신지요. 누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도 만들고 저렇게도 만든다고요. 줄다리기 하듯 하나님을 잡아당기면 아무래도 힘 센 쪽으로 끌려가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 하나님 아버지가 아주 신용이 없어졌답니다. 돈쟁이 하나님, 권력쟁이 하나님, 폭력 하나님…. 하지만 우리는 정말 쓸쓸하답니다.

하나님, 봄이면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착한 사람이 아직도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 그러니까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그늘진 겨레와 지구촌의 불쌍한 사람들이 한 없이 울고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보여주십시오.

서러운 사람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십시오. 하나님 설입니다. 오늘밤부터 별을 쳐다보며 기다리겠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길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추신: 경북 안동 일직교회 종지기 권정생 집사(아동문학가·1937∼2007)의 편지를 필사(筆寫)하듯 필사(筆思)했다. 1986년 저서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에 발표된 글이다. 전정희 종교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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