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창욱] 지갑 분실사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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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버스는 낯선 풍경을 달리고 있었다. 창밖은 칠흑 같았다. 집에 가는 길은 이렇게 캄캄하지 않다. 내 사지가 멀쩡한지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읽는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탄 게 몇 시였는지 서둘러 기억을 더듬는다. 밤 10시 반이 조금 안 됐던 것 같다. 한 시간 반이나 달렸단 말인가. 그 시간 광화문에서 내가 사는 강서구 어귀까지는 30여분이면 족하다.

잠들기 전 마지막 본 창밖 풍경이 생각나지 않는다. 차에 타자마자 잠든 모양이다. 나는 아직 몽롱했지만 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갱도처럼 어둡고 낯선 풍경을 계속 내달렸다.

나는 내려야 했다. 차창 위 노선표를 눈으로 좇는다. 버스는 이미 오래전 서울을 빠져나왔다. 경기도 김포를 거쳐 인천 서구를 관통하고 있었다. 곧 종점이다.

벨을 누르고 뒷문으로 갔다. 경황이 없지만 그래도 교통카드는 찍고 내려야 한다. 이 알뜰한 습관 덕에 지갑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됐다.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의자 위아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다. 바로 뒷자리엔 중년여성이 앉아 있었다. 두리번대는 나를 ‘웬 놈이냐’ 하는 얼굴로 봤다. 통로와 뒷문 계단에서도 동전 한 푼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두 정거장을 지나쳤다. 다른 승객 2명은 내릴 기미가 없고, 종점까지 갈 것 같았다. 나는 포기하고 내렸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 11시50분 인천 원당사거리에서 10차선 도로를 가로질렀다. 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택시비 대납을 부탁했다. 입술이 만근 같았지만 그 먼 길을 걸어갈 순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되돌아가면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모두 정지시켰다. 잃어버린 검정 반지갑에는 카드 두 장 말고도 현금 8만원, 주민등록증, 명함이 들어 있었다. 사건 현장인 1002번 버스를 운행하는 김포운수에 다음 날 전화했다. 전날 버스에서 나온 지갑은 없었다고 한다.

절도범을 잡기로 했다. 그는 같은 버스에 탔던 사람이 분명하다. 나는 운전석 뒤쪽 세 번째 줄 창가에 앉아 있었다. 버스 내부 CCTV에 지갑 가져가는 모습이 잡혔을 것이다. 영상을 보려면 먼저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강서경찰서로 갔다. 기자임은 밝히지 않았다. 형사계 철창문 앞 당직반장은 애매하다는 반응을 보이다 마지못한 듯 막내 형사에게 나를 맡겼다. 상체가 빵빵한 그 젊은 형사는 의욕적이었다. “제가 CCTV 안 볼 거 같죠? 직접 가서 보고 꼭 잡을 겁니다. 왜냐고요? 동시대 젊은이가 피해를 당했으니까요.” 믿음이 갔다.

오후 8시 반쯤 한 남자가 전화를 해왔다. 지갑을 주운 사람이라고 했다. 주운 곳은 버스 뒷문 쪽이라고 답했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선의의 습득자라면 버스 안에서 나를 깨웠을 것이다. 연락해오기까지의 공백도 너무 길었다. 견물생심으로 가져갔다 뒤늦게 마음을 고쳐먹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어쨌든 돌려주기로 했으니까.

다음 날 퀵서비스로 받은 지갑엔 약 올리듯 현금만 증발하고 없었다. 남자는 애초 그 상태였다고 했다. 누군가 버스 안에서 지갑을 뒤져 돈만 쏙 빼고 다시 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그럴까. 보통이라면 들킬까 봐 지갑을 통째로 들고 내렸을 것이다.

이튿날 오전 경찰과 통화한 뒤 지갑 습득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에서 참고차 연락이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2시간쯤 뒤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문자에 전화로 답한다는 건 당장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받자마자 그가 크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남자는 잠든 내 쪽 의자에 방치된 지갑이 눈에 띄자 그대로 들고 내렸다. 지갑을 열어보고는 현금부터 빼갔다. 돈을 돌려주지 않은 건 원래 얼마가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셨어도 그러면 안 되는데 겁이 나서 솔직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머리를 푹 숙인 그가 보이는 듯했다. 이날은 추석 연휴 직전인 2014년 9월 5일이었다.

그달 14일 여의도에서 그를 만났다. 20대 후반인 그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부류로 보였다. 기만적 인상은 없었다. 모든 잘못이 실수를 핑계로 무마될 순 없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낄 줄 아는 사람에겐 처벌보다 용서가 옳을 것이다. 면죄부는 닳고 닳은 탐욕가들보다 작은 것을 탐하면서도 크게 두려워하는 소시민에게 주는 게 가치 있다. 나는 탄원서를 썼고 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우리는 아주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다.

강창욱 사회부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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