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탐욕이 부추긴 ‘멧돼지의 반격’ 기사의 사진
멧돼지의 반격이 시작된 것인가. 서울 주택가는 물론이고 아파트 등 도심 깊숙한 곳까지 멧돼지 출몰이 잦아졌다. 한 마리가 아니라 떼를 지어 휘젓고 다닌다. 농작물 피해는 약과다. 심지어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쯤 서울 은평구 진관동 기자촌 주택가. 멧돼지 3마리가 엽사들에 의해 사살됐다. 길이 1m, 몸무게 80㎏가량의 이 멧돼지들은 모두 수컷으로 이틀 전 이곳으로 몰려왔다. 멧돼지 기동포획단의 추적을 피해 달아났던 멧돼지들은 다시 주택가로 내려와 활개를 치다 죽었다.

멧돼지의 도심 출현은 동물들의 터전을 잠식하고 훼손한 인간의 탐욕이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심 주변 크고 작은 산에는 등산로가 없는 곳이 없다. 산을 빙 둘러싸고 둘레길도 조성됐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지난해 멧돼지 출현으로 119구조대가 출동한 횟수는 총 364건에 달한다고 11일 밝혔다. 2011년 43건과 비교하면 불과 4년 만에 8.5배 급증했다. 2012년 56건에서 2013년 135건으로 141%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364건)에도 전년(185건)보다 96.8%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북한산 일대에 서식하는 멧돼지를 300마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멧돼지 도심 출현이 급증한 것은 서식지 노출, 먹이 부족, 내부 경쟁력 심화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한 번에 7∼8마리를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한데 상위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다. 멧돼지가 사람을 위협할 정도로 주택가 출몰이 늘자 종로·은평·성북·서대문·강북·도봉·강동·노원·중랑구 등 9개 자치구는 엽사로 구성된 기동포획단을 운영해야 할 정도다.

야생생물관리협회 서울지회 이승룡 사무국장은 “겨울은 교배기여서 주도권 다툼에서 밀려난 수컷들이 주거지나 등산로까지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며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멧돼지가 주로 목격되는 곳은 북한산을 끼고 있는 지역.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멧돼지 출현으로 출동한 건수는 총 783건인데 이 중 종로구가 전체의 37.3%인 292건을 차지했다. 이어 은평구 135건(17.2%), 성북구 120건(15.3%), 도봉구 67건(8.6%)이었다.

북한산 내부는 수많은 등산로가 조성돼 있으며 몇 년 전부터는 둘레길이 조성돼 휴일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때문에 멧돼지들의 서식지가 좁아들었고, 결과적으로 멧돼지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가뜩이나 개체수 증가로 경쟁이 심해진 상황에서 인간마저 서식지를 잠식하자 멧돼지들도 생존을 위해 인간의 터전을 침범하며 반격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심으로 내려온 멧돼지는 인명을 해칠 우려가 있어 기동포획단을 출동시켜 대부분 사살한다”며 “멧돼지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멧돼지 피해를 막기 위해 3월부터 북한산에서 ‘멧돼지는 산으로’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상시 포획단을 운영해 개체수를 조절하는 한편 멧돼지들이 먹이를 구할 수 있도록 서식 환경을 개선하고 도심·농경지 접근을 차단하는 인간과 멧돼지의 공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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