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쿠바 아바나에서의 멈춰진 시간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기쁜 나의 도시, 여기서 도시라 함은 내게 영감을 준 지구상의 모든 장소를 의미한다. 최첨단적 요소를 지닌 현대적 도시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린 기쁨을 주는 그런 도시들도 있다. 그중 쿠바 아바나를 어찌 잊으랴.

아바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체 게바라의 사진 아래 ‘쿠바 리브레’라고 쓰인 포스터였다. 칵테일 종류 중의 한 이름인 ‘쿠바 리브레’는 독립전쟁 당시의 ‘자유쿠바 만세’라는 구호다. 인상적인 건 쿠바에는 50여년간 통치했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도, 그 정권을 이어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도 아닌 체 게바라의 흔적이 제일 많다는 거였다.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보다, 스페인의 피카소보다, 한국의 이순신보다 훨씬 많다. 아니 쿠바는 젊어서 죽어 영원히 늙지 않는 삶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팔아먹으며 산다. 이 세상 모든 젊음들의 로망, 체 게바라가 아름다운 건 권력을 마다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다 죽은 영원한 삶의 혁명가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평양의 거리 어디에나 붙어 있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와는 전혀 다른 자유와 생동감이 넘쳐난다. 같은 반미주의의 길을 걸었어도 쿠바에는 적어도 의료와 교육이 무상이며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특이하게도 쿠바에서는 가수나 화가, 조각가 같은 예술가들이 제일 잘산다. 시가를 문 거리의 악사들과 세월이 목소리로 여문 늙은 가수들, 쿠바의 대표적인 칵테일 모히토와 그 이름도 유명한 시가 이름 고히바, ‘치코와 리타’라는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며 나는 자주 아바나의 거리를 꿈꾸곤 했다. 실제로 가본 쿠바는 가장 최근에 지은 건물이 1960년대 건물이니 온 나라가 다 박물관 같다.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57년산 벤츠와 람보르기니 등 달리는 골동 조각품들도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바나 거리의 명품들이다.

아바나에 밤이 오면 자본주의 광고판 대신 화려하지 않은 가스등 불빛으로 마치 중세도시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하다. 어두운 밤에 높은 곳에 있는 카페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며 모히토 한 잔 하는 기분은 살아 있음을 만끽하게 해준다. 아마 몇 년 뒤만 해도 아바나의 밤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해질지 모른다. 화려한 전광판과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아바나는 90년 체코 프라하나 폴란드의 크라카우에 갔을 때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중세의 아름다움을 연상시켰다. 20년 뒤 다시 간 동유럽은 서유럽 다른 나라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쿠바를 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되도록 빨리 가보길 권한다. 쿠바 사람들에게 “빨리 좀 해 주세요”라고 하면 “왜 빨리 해야 되는데요?”라고 되묻는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빨리’라는 단어다. 하긴 우리는 그 ‘빨리’의 정신으로 오늘의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빨리 하는 일은 늘 후유증이 남는지도 모른다. 빨리 걸어온 우리가 얻은 것이 돈이라면 잃은 것은 행복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쿠바에서도 한국 드라마는 인기 ‘짱’이었고, 젊은이들이 서툰 한국말 발음으로 말하는 우리나라 꽃미남 배우들 이름이나 K팝 가수들의 이름을 내가 더 모를 지경이었다. 서른 살 시절, 쿠바를 여행하고 돌아온 선배가 가난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30여년 전의 아바나는 어땠을까? 아바나 여행을 하고 나니 타임머신을 타고 선배가 가봤다는 오래된 아바나도 꼭 가보고 싶었다.

꿈에 그리던 쿠바 여행길을 안내해준 사람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평양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대학에서 조선어학과를 졸업한 쿠바인 가이드 ‘호세’였다. 북한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낸 호세는 약간의 북한 어투가 섞인 한국말을 기가 막히게 구사했다. 90년대 중반 외교관 가족들은 특별대우를 받았지만 대다수 평양시민들은 밤 동안 다리미를 켜놓고 자며 겨울을 이겨내기 일쑤였고, 시골에서는 얼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 했다. 하지만 평양시내는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으며, 산 중에서도 묘향산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북한 주민들은 허락을 받아야만 산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산 속은 언제나 아무도 없이 고요했다. 호세가 북한에서 보낸 7년은 고독한 외계의 항성에서 보낸 독특한 체류의 기억이다.

잊지 못할 먼먼 쿠바 여행에서 돌아온 지 2주 만에, 53년 만의 침묵을 깨고 쿠바와 미국이 국교 정상화 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반가우면서도 왠지 허탈했다. 문득 체 게바라의 일기 가운데 이런 구절이 떠올랐다. “동지여. 그게 비록 꿈일지라도 끊임없이 말하자. 우리의 꿈은 실현 가능한 일이며, 가능해야만 하며, 가능할 것이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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