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복실] 제2 홀로코스트 기념관 만들자 기사의 사진
지난 연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타결됐다는 뉴스가 속보 기사로 뜰 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동안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얼굴이었다. 벌써 작년에만 할머니 아홉 분이 돌아가셨다.

일본 정부의 사과 한마디도 못 듣고 눈을 감으신 할머니들의 눈물과 한의 깊이를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저께도 경남 양산에서 또 한 분이 돌아가셔서 지금 살아 계신 할머니는 마흔다섯 분뿐이다. 재작년 초 정홍원 총리를 모시고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할머니들은 한목소리로 “죽기 전에 일본 정부가 사과하는 것을 보여주세요” “아마도 우리가 죽기만 기다릴 거야”라며 안타까워했다. 노래를 좋아했던 배춘희 할머니는 정 총리 손을 꼭 잡고 ‘소녀아리랑’을 불렀다. 한이 담긴 가사와 곡조가 무척이나 슬펐다. 배 할머니도 2014년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사실 현 정부는 그 어느 정부보다 피해 할머니들의 한을 보듬고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받기 위해 강한 정책을 써왔다. 유엔을 비롯해 2014년 프랑스에서 열린 앙굴렘 국제 만화전에 위안부 관련 전시물을 출품하는 등 국제사회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년간 냉랭한 대일 관계가 이어져 왔다. 그러한 정부의 강한 의지와 노력이 부메랑이 되어 동북아 정세에서 한·미·일 공조를 부르짖는 미국의 압박으로 되돌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의 강경한 태도와 미국의 외교 압력은 확고하게 잘못이 없다던 아베 정권의 태도를 일부 변하게 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룬 것은 24년 만이다. 미국 프랑스 등 외신에서는 역사적 합의라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피해자 중 일부 할머니들은 협상을 다시 하라고 하신다. 피해자들이 생존해 계신 상황에서 합의를 할 경우 피해자들의 의견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협상 대상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일본이므로 절충과 타협이라는 대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이제 큰 틀에서 일본의 사과를 보다 진일보한 사과로 인정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일본 정부가 제공할 10억엔으로 설립할 재단의 사업을 위안부 문제가 다시는 지구상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기억하는 일에 사용할 것을 제안해본다. 미국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같이 온 인류가 잊을 수 없는 반인륜·반인권 범죄의 한 상징을 만드는 것이다. 그 기념관에서는 피해자 기념사업뿐만 아니라 교육, 연구 등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져 일본의 범죄가 영원히 기억되고 향후 재발 방지 약속이 이루어지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념관 건립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회담 이후 일본 언론의 반응을 보면 앞으로의 일이 더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우리나라와 관련된 여러 사안에서 일본 정부의 일관성 없는 치고 빠지기식 행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국화와 칼’은 저명한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문화 연구서다. 저자는 일본의 특성을 ‘국화’와 ‘칼’이라는 두 극단적인 상징으로 표현했다. 일본인은 아름다움과 예술을 사랑하는 동시에 칼을 숭배하고 무사를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는 이중성과 양면성을 가진 민족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 일본은 그런 나라다. 그래서 협상이나 외교에서 늘 어려움을 겪는다. 일본과는 합의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진정성 있는 사과의 후속조치를 잘 이행함으로써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의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한 이유다.

이복실 (숙명여대 초빙교수·전 여성가족부 차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