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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영화만을 위해 달려온 성룡의 솔직한 수다

성룡·주묵/쌤앤파커스

[책과 길-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영화만을 위해 달려온 성룡의 솔직한 수다 기사의 사진
1983년 개봉된 영화 ‘프로젝트 A’의 한 장면. 성룡은 시계탑에서 뛰어내리는 이 장면을 촬영한 후 2년 동안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후로 그의 영화인생을 대표할 이미지, 즉 고난도 스턴트신을 대역 없이 직접 찍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제공했다. 쌤앤파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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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도 늙었다. 1954년 4월생인 그가 지난해 만 60세를 기념해 자서전을 냈다. 책 제목이 근사하다.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최근 국내 번역된 이 책은 성룡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출판사는 이 책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자서전’이란 홍보문구를 붙였는데, 동의할 수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유쾌하고 솔직하고 따뜻하다. 성룡이 초대한 식사 테이블에 앉아 그의 긴 수다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성룡은 신비주의 스타가 아니다. 그는 평생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냈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식사도 언제나 여럿이 모여서 한다. 밥 사길 좋아했고 선물 주는 걸 즐겼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고, 이야기가 그치질 않았다. 성룡의 ‘수다 본능’은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책은 성룡의 구술을 공동 저자인 주묵이 받아 적어 정리한 것이다. 주묵은 영화사의 홍보 담당 직원이다. 성룡 정도의 대스타가 첫 자서전을 젊은 여직원에게 맡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성룡은 그런 사람이다. 성룡은 주묵과 몇 차례 일을 한 적이 있고 그녀가 쓴 글을 봤다. 그리고 주묵이 “따거(큰형·연배가 높은 남자에 대한 존칭)의 옛이야기들을 써보려고 해요. 책을 낼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라고 어렵게 얘기를 꺼내자 “한번 해봐”라고 그 자리에서 승낙한다. 그리고 3년간 주묵의 질문들에 답한다.

주묵은 성룡의 인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성룡이 들려주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전달하면서 다만 최대한 다양한 얘기들을 끌어내려 노력한다. 그래서 이 책은 성룡의 삶을 종적으로 꿰어내는 게 아니라 횡적으로 펼쳐 보인다.

성룡은 많은 주제들에 대해 두서없이 얘기한다. 가족과 영화 이야기는 물론이고 연애했던 여자들, 친구들, 20대에 벼락부자가 돼서 쇼핑과 도박에 빠져 살았던 시절, 속고 사기당한 얘기들, 실패와 좌절의 경험들, 다양한 사고·부상 기록, 애완동물이나 컬렉션 등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주묵은 성룡의 얘기를 전하는 틈틈이 그가 곁에서 지켜본 성룡에 대해 쓴다. 그의 글은 성룡이 자기 입으로 말하지 못한 인간적 특징과 생각, 고민들을 드러내면서 성룡의 얘기들을 보완한다.

이 책은 아시아 영화인으로는 최고의 성공을 거둔 한 비범한 남자를 다루고 있지만 신화나 박수소리는 거의 삭제돼 있다. 성룡을 예술가로 조명하려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성룡은 그의 영화 주인공들이 그렇듯 평범하고 실수투성이 인물이며, 역시 그의 영화 주인공들이 그렇듯 실수와 어려움을 이기고 선의와 용기, 웃음으로 비범함에 도달한 인물이다. 그것은 이소룡과 성룡의 차이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이소룡을 초인으로 여기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단점도 많고 불가능한 것도 많은 사람 말이에요.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대협이나 영웅은 더더욱 아니죠.”

그는 ‘성룡 영화’의 특징에 대해서 말하면서 첫 번째로 “나는 한 번도 전지전능한 영웅을 연기한 적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점도 거기에 있다.

그는 “늘 남다른 것을 추구한다” “최고가 아니라 유일함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위험한 액션을 모두 직접 연기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 장면으로 담아내는 유일한 배우다.

“나의 액션이 최고라고 말할 수도 없고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가진 모든 자원과 능력을 다 쏟아 붓고 매일같이 고민하며 최선을 다함으로써 마침내 관객들 앞에 떳떳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묵묵히 할리우드와 경쟁하는 나만의 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책 뒷부분에 실린 성룡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1962년 ‘대소황천패’를 시작으로 2016년 ‘Wolf Flag'까지 200여편이 기록돼 있다. 주연이나 감독을 맡은 영화만 따져도 100편이 된다. 작품 수보다 더 놀라운 건 그의 50년 넘는 영화인생에서 특정한 공백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는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고, 최고 스타로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고 비난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 성룡은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고, 늘 더 나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넘어질수록 용감해진다는 것, 그게 바로 성룡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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