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미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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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내 휴대전화 음악 재생 목록에서 빠지지 않던 노래가 있다. 가수 자이언티(본명 김해솔·25)의 ‘양화대교’다. 알앤비(R&B·리듬앤블루스) 장르로 택시기사인 아버지 주머니에서 나오던 용돈을 기다리던 아이가 시간이 흘러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이 된 감정을 노래했다. 소박한 가사와 현악 오케스트라,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와 드럼이 조화를 이뤄 서정미를 끌어낸다. 노래는 깊은 밤 양화대교를 배경으로 한 한 편의 영화 같다.

마음이 짠해지는 노래 한 대목이 있다. “내가 돈을 버네/ 돈을 다 버네/ 엄마 100원만 했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 또 강아지도/ 이제 나를 바라보네.” 자이언티는 이 곡을 발표하면서 “모든 젊은 가장과 가족에게 바친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바통을 넘겨받아 이젠 가족들 모두가 자신을 의지하는 상황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였다. 이 노래에서 열다섯 번이나 반복된다.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2014년 9월에 발표된 이 노래가 1년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원사이트 인기 차트 70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준 울림이 꽤 큰 모양이다.

연봉 10억원인 사람에게도, 시급 6030원을 받으며 사는 사람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돈 버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경이로움을 느꼈던 때 말이다. 많고 적음을 떠나 주어진 돈이 너무나 값있게 느껴졌던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 엄마 심부름을 하고 받았던 동전 몇 개,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았던 단돈 몇 만원, 그리고 첫 월급. 세월이 흘러 주머니는 더 두둑해졌고 맘먹으면 원하는 것을 대부분 살 수 있게 됐지만 내가 느낀 돈의 값어치는 그 양과는 비례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 소중한 기억을 잊고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된 것 말이다. 돈이 가장 큰 성공의 지표고 많은 돈을 쓰는 것이 공동체의 미덕이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돈의 가치와 품격은 낮아진 듯 보인다.

“돈을 지불했다”며 상점 직원을 무릎 꿇게 하는 ‘갑질’ 소비자, 자신에게 고용됐다는 이유만으로 운전기사를 폭행하고 직원에게 폭언을 퍼붓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회장님 이야기는 이제 놀랍지 않다. 비싼 외제차를 자랑하며 도로를 질주하던 운전자들은 쿨하게 벌금을 내고 유유히 사라진다. 아름다움과 지식을 병원과 학원에서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강남 빌딩 숲으로 몰려든다.

모두가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1인당 최대 6500억원을 받게 된 미국 복권 ‘파워볼’ 당첨자에 대한 관심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뜨겁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벌게 해준다면 구름처럼 몰려든다. 일부는 이런 심리를 이용해 사기를 친다. 2015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사기사건 발생 비율은 16.1% 증가했다. 2014년을 기준으로 전국에서 발생한 사기사건은 24만4008건인데 한 달에 2만 건, 하루에 약 677건이나 돈을 미끼로 속고 속이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마치 집단 최면에 빠진 것 같다.

물질만능주의라는 이 위험한 이론은 젊은이들에게는 ‘돈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 변주됐다. 자조하고 사회 시스템을 비난하며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비되는 ‘수저계급론’이 등장했다.

최근 돈을 매개로 연예인에게 성상납을 받는 이른바 ‘스폰서’의 실체를 파헤친 한 TV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브로커가 연예인이나 연예인 지망생에게 접근해 성매매를 원하는 재력가와 연결시키고 하룻밤에 수천만원씩 받아 나눠 가졌다고 한다. 주로 데뷔를 하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지망생이나 갓 데뷔한 여배우들이 대상이었지만 걸그룹 멤버부터 유명 여배우까지 이 검은 제안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국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2012)에서 지난 30년간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이 지배하던 삶의 영역으로 시장과 시장 지향적 사고가 확산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봤다. 또 영리를 추구하는 건강, 교육, 공공안전, 보안, 사법, 환경보호, 스포츠, 임신과 출산 행위 등을 사고파는 ‘거래 만능 시대’로 규정하면서 “시장 거래가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도덕적·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하고 변질시킨다면 효율성이란 이유만으로 이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 속에서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이 균형을 무너뜨리고서라도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과욕일까.

김미나 사회부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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