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1부 ①]  내 집서 ‘행복한 이별’ 기사의 사진
삶의 마지막을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준비하는 가정호스피스 건강보험 시범사업이 다음달 2일 시작된다. 서울성모병원 가정호스피스팀 자원봉사자 남명희씨가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다가구주택을 방문해 위암 말기인 김모 할머니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 김지훈 기자
서울 용산구의 한 다가구주택 4층 집에 지난 15일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이경식(73) 명예교수가 들어섰다. 김인경(41·여)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남명희(53·여)씨가 동행했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핼쑥한 얼굴로 안방 침상에 누워 있던 김모(85) 할머니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김 간호사는 손을 꼭 잡으며 “진지는 드셨고? 불편한 데는 없어요?”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딸 고모(51)씨는 “통증이 오면 진통제 먹고 주무시기만 한다”고 했다. 심할 때는 몸에 통증 패치를 붙인다. 김 간호사는 팔에 꽂힌 영양수액을 체크했다. 혈압을 재고 욕창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폈다. 그 사이 남씨가 다리 마사지를 시작했다. 혈액순환이 안 돼 부어 있는 다리를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내곤 계속 주물렀다.

할머니는 이 집에서 40년을 살았다. 군인이었던 남편과 평생을 바쳐 일군 삶의 공간이다. 구석구석 남편의 체취가 있다.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병원에서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고 말했을 때 할머니는 “집에 가겠다”고 했다.

40년을 산 집에서…

할머니의 암이 발견된 건 3년 전이다. 이미 위암 4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간에도 퍼진 데다 암 덩어리가 위와 대장 연결 부위를 막고 있어 수술도 위험했다. 살고 싶었다. “항암치료를 해보자”는 의사의 말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할머니는 암과 싸웠다. 2년간 60여 차례 독한 항암치료를 버텨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9월 마지막 항암치료가 끝난 뒤 의사는 “길어야 3개월, 짧으면 한 달입니다. 호스피스를 알아보시죠”라고 했다. 억울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악착같이 살아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가족들은 입원이 가능한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봤다. 그런데 할머니는 “병원은 무섭다”며 한사코 “집에 가자”고 했다. 딸 고씨는 “암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옆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치고 끙끙거리는 걸 보셨다.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응급상황이 오더라도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를 일절 하지 말라고 가족에게 당부했다.

고씨는 “솔직히 집에서 어떻게 보살필지 걱정이 많이 됐다”고 했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는 거동이 불가능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고씨 가족은 할머니 집 아래층에 살면서 간병하고 있다. 주말마다 언니 가족이 찾아온다. 고씨는 “거동하실 수 있을 땐 같이 여행도 다니곤 했다. 이제 평안히 보내드리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가정호스피스의 문을 두드렸다. 통증 완화, 욕창 관리 등 말기 암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와 간호는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가정호스피스팀의 도움을 받는다. 가정호스피스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기대여명 6개월 안팎의 말기 암 환자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입원을 대체할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찾아가는 호스피스, 아름다운 동행

호스피스 자원봉사 5년째인 남씨는 “다른 봉사자와 함께 2주에 한 번씩 와서 샴푸와 마사지를 해드리는데 할머니가 무척 시원해하신다”며 “함께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러드리면 할머니 얼굴이 편안해 보여 좋다”고 말했다.

김 간호사는 가정호스피스 경력 6년의 베테랑이다. 현장 경험이 풍부해 의사 왕진이 필요한지, 병동에 입원해야 하는지, 임종 순간이 임박했는지 가늠한다. 그를 비롯한 간호사 2∼3명이 번갈아 주 2회 할머니를 찾는다. 보호자와 전화 통화는 수시로 이뤄진다. 이번에도 할머니 상태에 대한 의료적 판단이 필요해 이 교수와 함께 왔다.

이 교수가 왕진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할머니 가슴에 댔다. “숨을 크게 쉬어 보세요…아이고, 좋으시네.” 이번엔 손으로 아랫배를 만져보더니 “변이 좀 차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씨는 “사흘에 한 번씩 (대변을) 본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교수는 “관장이 효과 없으면 약국에서 둘코락스를 사서 드시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곤 할머니에게 고씨 칭찬을 했다. “좋은 따님 두셨네요. 효녀를 두셨어. 간병도 잘 하고….” 할머니 입가에 미소가 잠시 번졌다. 고씨는 “엄마를 위해 한달음에 와준 분들이 정말 고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죽음을 정복 대상으로 착각”

이 교수는 1988년 서울성모병원에 국내 첫 ‘병동 호스피스’가 생겼을 때부터 말기 암 환자들과 함께해 왔다. 한국 호스피스의 선구자다. 2008년 은퇴 후에도 1주일에 두 번씩 호스피스 병동과 가정에서 환자들을 살핀다.

이 교수는 “말기 암 환자가 통증과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마지막 삶을 가장 아름답게, 여한이 없도록 해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는 단순히 신체적 돌봄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과 삶에 관한 영적 돌봄까지 제공한다. 물론 환자의 종교를 존중하며 이뤄진다.

“60, 70년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가족이 다 모여 작별인사도 하고 집에서 모셨어요. 우리의 전통문화입니다. 그게 의학이 발전하면서 변질된 거죠. 죽음을 정복 대상으로 착각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삶의 마지막을 대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교수는 “살 수 있는 병은 치료하는 게 맞다. 하지만 말기 환자는 치료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의미 있게,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도리”라고 했다.

“호스피스는 뜻있는 몇몇이 하는 게 아니라 국가적 사업입니다. 복지국가의 역할이에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가정호스피스가 더욱 활성화돼야 합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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