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 있던 단색화가  조용익의 재발견… 성곡미술관 ‘지움의 비움’展 기사의 사진
조용익 화백이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자신의 단색화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품은 토담을 연상시키는 황갈색 바탕에 대나무를 연상시키는 형상이 무심한 듯 툭툭 배치돼 있다.
1970년대 한국 미술계의 메이저 경향이었던 단색화가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 상품으로 재조명받으면서 아시아 미술시장에서의 인기도 날로 치솟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간 묻혀 있던 단색화 화가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지움의 비움, 조용익 초대전’이 그것이다. 서울대학교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추계예술대학교 교수(1974∼1992)를 지낸 원로 조용익(82) 화백은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며 경기도 이천의 자택을 처분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병마마저 겹치며 미술계에서 잊혀져 갔다.

하지만 무대 뒤편에서 붓을 놓지 않으려던 그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강원도 사북의 폐교, 충북 음성의 허름한 식당 등 돈을 들이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찾아 전국을 전전했다. 이렇게라도 작업할 수 있었던 건 제자와 지인들 도움 덕분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1950년대 후반 국전 당선작부터 2000년대 초반 작품까지 100여점이 나왔다. 100호 이상의 대작이 대부분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사 다닐 때마다 제자들이 트럭을 끌고 와 옮겨줬던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조용익의 작품 세계는 박서보, 하종현 등 30년대생 원로화가들이 걸어온 길과 궤를 같이한다. 대학 3학년 때 인물을 그린 구상 작품으로 국전에 당선된 그는 60년대에는 30대 젊은 작가들을 흔들었던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추상 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70년대 들어 갓, 한복, 장구 등을 담은 반 구상 작품에 집중했다. 박정희정권의 민족주의 기치 아래 이 같은 한국적인 소재가 당시 화가들의 작품에 많이 등장했다.

그는 70년대 중반을 터닝 포인트로 단색화의 길로 들어섰다. 크게 1기(74∼80년대 초반) 점화의 시기에는 폭이 넓은 붓으로 묽게 갠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 전면에 고르게 칠한 다음 손가락으로 스타카토처럼 지워갔다. 멀리서 보면 점점이 점을 찍은 것 같다.

2기(80년대 초반∼80년대 후반) 물결의 시기에는 나이프로 표면을 긁어 물결무늬 효과를 냈다. 3기(90년대 초반∼현재)는 대나무를 닮은 형상을 화폭에 담은 무심의 시기로 불린다. 전시기획자 윤진섭씨는 “사군자의 하나인 대나무를 마음에 품고 무심하게 붓을 놀린 듯하다. 기교를 배제한 고졸한 느낌에서 동양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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