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최범] ‘지위추구 사회’의 디자인 기사의 사진
한국사회는 ‘지위 추구(status-seeking) 사회’이다. 지위 추구 사회란 특정한 지위를 얻는 것이 사회 구성원들의 최고 목표가 된 사회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 번듯한 직업과 신분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것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신분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회자되는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신분의 은유일 수 있겠다. 이런 사회에서는 삶의 가치가 철저히 외재화되어 있어서 내면적 가치나 진정성을 추구하며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다.

지위 추구 사회는 곧 ‘지대 추구(rent-seeking) 사회’이기도 하다. 지위를 추구하는 이유가 지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대(地代)란 원래 토지나 시설물을 이용하고 점유한 대가를 의미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공적 권력에 의해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는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자가 독점적으로 얻는 이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사회 구성원 다수를 희생시켜 특정 세력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행태’를 통틀어 ‘지대 추구 행위’라고 정의한다.

한국인들이 경쟁적으로 지위를 추구하는 이유는 지대를 얻기 위한 것이며, 그런 점에서 지위 추구 행위와 지대 추구 행위는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생산적인 노동을 하기보다는 지위를 통해 배타적으로 이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사’자 붙은 직업을 선망하는 것이나 건물주가 되는 것이 꿈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사회는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소수의 주인과 다수의 노예로 구성된 사회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수평적인 민주주의 사회와 거리가 멀다.

지위 추구 사회에서 인기 있는 디자인은 지위재(prestige good) 디자인이다. 명품을 비롯하여 신분을 드러내주는 디자인이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끈다. 명품도시, 명품교육, 명품건설 등등…. 이제 명품은 소비재에만 한정되지 않고 삶의 영토 전체로 확장되어간다. 과연 오늘날 대한민국에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영역이 남아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이다.

명품 디자인의 반대편에는 짝퉁과 싸구려의 광대한 대륙이 있다. 값비싼 명품은 누구나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대체물로 짝퉁이 있는 것이다. 고급 백화점과 쇼핑몰이 명품으로 채워져 있는 반면, 절대다수의 대중이 살아가는 일상 공간은 짝퉁과 싸구려 디자인이 지배하고 있다.

아마 그 대표격은 예식장과 모텔일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사회에는 적당한 가격에 디자인이 좋은 중간 제품들이 풍부하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중산층이 부재한 그만큼이나 적당한 중간 제품을 찾기가 어렵다. 고급품 아니면 저급품이다. 사회적 양극화는 바로 디자인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아파트가, 자동차가 바로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는 식의 노골적으로 계급 차별적인 광고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버젓이 전파를 탄다.

지위 추구 사회의 반대편에는 가치 추구 사회가 있다. 가치 추구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내면적이고 비물질적인 가치를 삶의 목표로 삼는 사회이다. 지위 추구 사회에서는 명품이 선호되지만 가치 추구 사회에서는 개성 용품과 DIY 같은 물건이 잘 팔린다. 디자인은 결국 사회의 주류 가치를 따를 수밖에 없다. 디자인이 사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범(디자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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