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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교회-서울 동신교회] “교회 주변에는 굶는 사람 없어야…” 마르지 않는 쌀통

쪽방촌·상가·동묘 등 맞춤형 이웃 돌보는 서울 동신교회

[한국의 공교회-서울 동신교회] “교회 주변에는 굶는 사람 없어야…” 마르지 않는 쌀통 기사의 사진
김권수 동신교회 목사가 서울 종로구 동신교회 입구에 있는 사랑의 쌀통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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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종로길 동신교회(김권수 목사) 입구엔 커다란 쌀통이 하나 놓여 있다. 누구든지 배가 고프면 허기를 달랠 수 있을 만큼 쌀을 퍼갈 수 있다. 이 ‘사랑의 쌀통’은 2008년부터 자리를 지켜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진 이웃을 동신교회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일각에선 ‘누군가 쌀을 훔쳐갈 것’이라거나 ‘관리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교인들은 “적어도 우리 교회 주변 이웃 중 굶는 분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김권수 목사의 의견을 따랐다.

사랑의 쌀통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돌아가는 쌀은 한 달에 200㎏ 정도다. 쌀통이 바닥을 드러내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쌀통은 교회 주차장 임대수익이나 성도들의 헌금으로 채워진다. 빈자(貧者)들은 주로 밤 시간에 쌀을 가져간다. 쌀을 가져가는 사람이 누군지 교회는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배고픈 이가 주변 눈치 때문에 쌀을 퍼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동신교회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엔 쪽방촌이 있다. ‘사랑의 쌀통’이 누구에게 희망이 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방인 설움이 이웃 섬김으로=동신교회는 1956년 2월 22일 청계천 근처에 세워졌다. 당시 이곳엔 무허가 판잣집이 난립했고 주로 이북에서 내려온 이들이 거주했다. 동신교회의 초창기 멤버들이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이런 설움을 겪어본 이들은 소외된 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약자에 대한 섬김이 동신교회에 자연스레 스며든 이유다. 6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동신교회 주변 판잣집은 대부분 철거되고 봉제공장과 완구점 등이 들어서면서 상가촌이 됐다.

김 목사의 목회철학 역시 이런 동신교회의 이웃 사랑 역사와 맥이 닿아있다. 김 목사는 영국 유학 당시 성경 속의 이웃 사랑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 복지 차원이 아니라 성경을 토대로 이웃 사랑을 분석한 논문은 이례적이다. 요즘엔 서울 장로회신학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노인목회와 관련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이를 통해 형성된 이웃 사랑에 대한 철학은 목회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배어난다. 오랜 기간 지역을 위한 섬김이 이어지다 보니 고풍스런 분위기의 석조건물 교회당은 이제 지역의 상징이 됐다.

◇상가·쪽방촌·동묘 등 맞춤형 이웃 돌보기=동신교회는 매주 금요일 정오기도회를 연다. 84년 시작된 정오기도회는 처음엔 말 그대로 기도만 드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점심에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 인근 상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식사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빵과 우유를 줄 수도 있지만 정성스레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한다. 매번 300명 정도가 모인다. 지금은 시장 상인뿐만 아니라 쪽방촌 주민이나 노숙인들까지 온다. 교회는 이들을 대상으로 이미용 봉사도 실시하고 있다. 지난 19일 이곳을 찾았을 땐 오전 10시부터 기도회에 나온 어르신들이 있었다.

이밖에도 동신교회는 인근 쪽방촌 주민 400세대에 매년 생활비 5700여만원을 후원하고, 우리모두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창신동 쪽방상담소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교회 주변엔 어르신들이 많다. 교회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어르신들의 놀이터인 동묘가 있다. 노인 사역에 소홀할 수 없는 이유다. 매주일 오전 11시30분이 되면 교회 청년들이 이 곳에 출동해 노인들을 위해 라면을 끓이며 ‘동묘봉사’를 한다.

◇이웃과 함께 한 환갑잔치=올해 60주년을 맞은 동신교회는 환갑잔치를 준비하면서도 이웃 섬김을 잊지 않았다. 교회는 60주년 기념행사로 최근 구순구개열(입술·입천장 갈림증)이나 난청 등을 앓고 있는 필리핀 아이 3명을 한국에 데려와 서울 연세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해줬다. 김 목사는 “치료 지원은 한순간의 응급처치 같은 도움일 뿐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면서 도울 일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등촌로 실로암안과병원과 연계해 시각장애인 60명의 개안수술도 도울 계획이다. 교인들을 대상으로는 장기기증 서약을 독려하고 전 교인 헌혈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김 목사는 목회 철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변 이웃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해요. 이웃 사랑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도 허울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동신교회 김권수 목사 인터뷰

“쌀 퍼가는 사람·장학금 받는 아이 누군지 몰라… 조용히 이웃 섬기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교회가 주변 이웃을 섬길 때 그것을 드러내선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하는데 쓰임 받는 것뿐이기 때문에 생색을 내려고 해선 안 되는 것이죠.”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동신교회에서 만난 김권수 목사는 그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동신교회는 ‘사랑의 쌀통’에 담긴 쌀을 누가 퍼 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매년 인근 4개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지급하지만 정작 교회는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이 누군지도 몰랐다. “장학금 전달식을 열고 아이들과 사진을 찍으면 자존심 상해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생색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냥 말없이 조용하게 지역사회를 위해 우리교회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그걸로 하나님은 기뻐하실 겁니다.” 조용히 감동을 줄 때 열매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수차례 거절한 뒤 마지못해 응했다.

김 목사는 교회가 이웃을 도울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됐을 때도 선교사들이 병원을 세운 뒤 유교나 불교, 샤머니즘을 믿는지 따지지 않고 치료해줬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경에 소개된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의 종교나 국적, 인종 등을 따지지 않고 그냥 도와줬어요. 교회는 이웃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외면해선 안 되고 고통 분담에 앞장서야 합니다. 특히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교회는 그 어떤 것도 따지지 말고 일단 베풀고 봐야합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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