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이너 차일드 기사의 사진
‘나는 지나간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 받고 싶다… 이미 오래전에 떠나가 버린 지난 어린 시절의 아이, 그 아이가 지금도 당신과 내 안에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당신과 나의 마음의 문 뒤에 서서 혹시라도 자신에게 무슨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로버트 풀검의 시 ‘가장 받고 싶은 선물’ 중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성인이 되어 간다. 상처 입은 ‘내면 아이(inner child)’를 품은 채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정서적 학대나 결핍으로 내면엔 성장하지 못한 ‘성인 아이’가 존재하게 된다. 이 ‘성인 아이’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정서적으로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가정은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가장 안전해야 할 그곳에서 가정폭력으로 자녀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다. 가해 부모들은 대부분 ‘자신도 어렸을 때 맞고 자랐다’고 말했고, 체벌로 제재하는 것이 최선의 훈육이라고 생각할 만큼 왜곡된 자녀관을 가지고 있었다. 폭력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또 폭력 아버지가 된다. 왜 폭력은 대물림되는 것일까.

정신과 의사 브루노 베틀하임은 이 과정을 ‘가해자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체적 정서적 폭력들은 어린아이에게 너무나 끔찍한 것이어서 학대받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이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가해자와 동일시해버린다. 즉 내게 해를 가하는 사람을 증오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존 브래드쇼는 그의 저서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에서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소름 끼치도록 학대당했던 어머니가 자신이 당했던 방식대로 세 살도 안 된 자식을 ‘유대인 돼지’라고 부르며 마구 때렸다는 내용이다. 한때 무기력하게 학대당한 아이가 자라서 가해자가 되고 그 속엔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폭력적인 환경에 자주 노출되면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폭력적인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부부싸움이 자녀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2∼7세에 부부싸움을 목격한 자녀는 심하게 맞은 것 이상의 고통과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에겐 부모의 무서운 눈빛, 표정도 폭력일 수 있다. 엄마의 반복되는 무표정한 얼굴도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우선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내면 아이’가 아직도 상처받은 상태로 있다면, 자녀를 돌보면서 겁에 질려 상처받고 이기적인 자신의 ‘내면 아이’도 함께 돌봐야 한다. 부모세대를 탓할 수 없다. 그들 역시 과거에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성인 아이’일 수 있다. 그 어떤 부모도 완벽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로 인해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실마리를 찾아가는 마중물은 내가 가족에게 상처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족이니까 말로 하지 않아도 이해하겠지’ 또는 ‘식구니까 괜찮다’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지시와 책망의 말보다 격려와 지지의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자녀에게 “숙제는 했니”라고 묻기 전에 눈을 맞추고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자. 마치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부모가 자신의 경험을 자꾸 강조하며 자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렇지 않도록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스스로 자신의 문제도 알고 ‘내면 아이’ 치유의 실마리도 찾아가는 힘을 키우게 될 것이다.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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