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1부 ②] 입원 첫날 찡그린 그녀… “화장하고 다시 사진 찍을래요” 기사의 사진
환자와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24일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춘천호스피스 병동에서 함께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다(왼쪽). 박영의 원장이 이금순씨를 진찰하고 있다(오른쪽). 춘천=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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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호스피스, 나를 위한 선택

② 그곳의 죽음은 인간적이다


“임○○ 환우가 힘들어하시더니 오전 6시23분 임종했습니다.” 간밤에 환자들이 어땠는지 일일이 상태를 점검하던 회의실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망자(亡者)는 췌장암 말기였다. 3주 전 시한부 선고를 받고 지난달 18일 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삶의 끝자락에서 평안을 찾으려 했을 테다.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향년 70세.

지난달 24일 강원도 춘천 대룡산 자락의 ‘춘천호스피스’ 병동은 부고로 아침을 맞았다. 죽음이 드리운 그림자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간호팀장은 환자들의 상태를 계속 설명해 갔다. “김○○ 환우는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였다.” “신○○ 환우는 깊이 잠들어 식사를 걸렀다.” “오○○ 환우는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말기 암환자의 마지막을 보살피는 이곳에선 죽음이 빈번하다. 대개 입원 한 달을 넘기지 못한다. 하루걸러 임종 소식이 들려올 때도 있다. 하지만 마냥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환자 여섯 명은 끝까지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의료진도 그들의 노력을 응원하며 세심한 손길로 살폈다.

“살아서 나갈 거예요”

호스피스 병동은 드나듦이 잦다. 떠나간 자리는 금세 다른 환자가 채웠다. 최모(51)씨는 처음 찾은 호스피스 병동이 낯선 눈치였다. 눈길을 옮기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병동은 판잣집처럼 병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종합병원 다인실과 달랐다. 몸을 가눌 여유가 있었다.

최씨가 인두암 진단을 받은 건 10년 전이다. 시간의 길이만큼 투병도 지난했다. 그 정도 고생했으면, 그쯤 버텼으면 새로운 삶이 주어질 법도 한데, 지난 1월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종합병원에서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야윈 몸은 주삿바늘 하나를 허락할 틈도 없어 보였다.

한참을 서서 병동을 둘러보던 최씨는 로비 의자에 걸터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창밖에선 농부가 밭에 고개를 파묻고 겨우내 아무렇게나 자라난 잡초를 뽑고 있었다. 가까운 봄이면 감자가 싹을 틔울 것이다. 그는 병동이 자리한 이곳 동산면이 익숙했다. 옛 친구가 가까운 과수원에서 사과를 키운다고 했다.

문병 올 친구가 지척에 있어 힘이 되겠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관절개를 한 터라 말 한마디가 힘에 부쳤다. 최씨는 “살아서 나갈 거예요”라며 빙긋 웃었다. 숨이 새어 나오지 않게 절개부를 손으로 막고서야 겨우 말을 뱉어냈다.

같은 시간 최씨의 아내는 입원 상담을 받았다. 의료진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아꼈다. ‘만약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건강을 되찾을 거라 믿지만’ 등 다른 말을 앞세우고서야 임종 절차를 설명했다. 아내는 “마음 단단히 먹었다”면서도 새어 나온 눈물 탓에 진즉 숙여버린 고개를 좀체 들지 않았다.

“예쁘게 화장(化粧)해 주세요”

A씨(43·여)는 “목욕하기 싫다”며 자원봉사자와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매주 수요일 오전 자원봉사자들이 목욕봉사를 하러 호스피스 병동을 찾는다. 제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은 그날만을 기다렸다. 타인에게 몸을 맡기기엔 아직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걸까. A씨는 지난달 2일 입원 이후 한사코 목욕을 거부하고 있다. “깨끗하게 씻으면 개운할 거예요”라는 간호사의 권유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대신 “예쁘게 화장해 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호스피스 병동에 온 환자들은 입원 첫날 가족, 의료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다. A씨 병상 곁에도 그날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 그는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A씨는 “화장을 하고 다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입원 첫날 마음이 편치 못해 사진이 잘 안 나왔다고 딸이 내심 신경 쓰는 듯했다”며 “딸이 ‘얼른 건강해져 봄나들이 가자’는 말을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한다”고 했다.

“놀이 같은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점심식사 뒤엔 정월 대보름을 맞아 윷놀이 한 판이 열렸다. 김모(65·여)씨는 썩 내키지 않는다며 머뭇거리면서도 팔뚝만 한 스티로폼 윷 하나를 집어 들었다. 높이 던졌다. 환자와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각각 윷 하나씩을 나눠 들었다. ‘도’에 탄식하고 ‘윷’에 환호하고 ‘모’에 어깨를 들썩였다. 여느 명절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김씨는 “놀이 같은 건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도 피어나오는 웃음까진 숨기지 못했다.

김씨는 1999년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삶은 고단했고 치료에 전념할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2012년 결국 말기 진단을 받았다. 4년간 입원과 통원이 반복됐다. 고단한 시간이었다. 웃을 여유도 없었다. 그런 그가 요즘은 조금이나마 웃는다.

자원봉사자들은 같은 배에서 태어난 피붙이마냥 살갑게 대해줬다. 서로 말벗을 자처했다. 아침드라마 내용부터 살아온 얘기까지 작은 병상에 누워서도 나눌 얘기는 넘쳤다. 간호사들은 조금이라도 불편한 구석이 있을까 싶어 늦은 밤에도 자주 안녕을 물었다.

가족과 같이, 가족처럼

환자만 호스피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남은 가족이 겪는 감정의 무게는 가늠조차 어렵다. 이금순(64·여)씨는 남은 시간을 아들(37)과 함께 지내고 싶어 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다. 춘천호스피스는 그런 이씨에게 편히 지내라며 기꺼이 1인실을 내줬다. 중환자실 병동에서 마지막을 준비했다면 누리지 못했을 일이다.

이씨는 2012년 자궁경부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동시에 6개월 시한부 선고도 내려졌다. 요양원과 복지시설에서 지내다 지난해 9월 호스피스를 찾았다. 늘 곁에 있어 주는 아들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이씨는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위안이 될 때가 많다”고 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여태껏 4년 가까이 살았다”면서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곁에서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춘천호스피스는 해마다 4월과 11월이면 ‘기러기 가족 모임’을 갖는다. 호스피스를 거쳐 간 환자들의 가족이 다시 병동에 모인다. 한데 모여 밥을 먹고, 떠난 이에게 차마 못 했던 말들을 함께 나눈다. 수신자 없는 편지를 쓰기도 한다. 이 단출한 모임이 사별 가족에겐 심심한 위로가 된다.

‘춘천호스피스’ 병동은 말벗에 궂은일… 60명 넘는 자원봉사자 헌신

정현근(70·여)씨는 매주 수요일 춘천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병동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빨래가 주업이고, 안마가 부업이다. 지난 2년간 거르지 않고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젊은 환자를 대할 때면 이 병동에서 떠나보낸 동생 생각에 잠기곤 한다.

정씨의 동생은 지난해 1월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대학병원에서 6개월을 보냈지만 차도가 없었다. 정씨는 평소 봉사활동을 하던 호스피스 병동이 떠올랐다. 동생에게 호스피스로 옮기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란 생각이 남아 있던 탓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지난해 6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뒤 두 달이 못 돼 사망했다. 정씨는 늘 동생 곁을 지켰다. 그는 “삭막한 대학병원 병실 대신 호스피스 병동을 택한 덕분에 동생이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다”며 “이렇게 봉사하는 동안은 사별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삭일 수 있다”고 말했다.

춘천호스피스는 1999년 이주호 소양제일교회 목사가 설립했다. 2012년 보건복지부 완화의료전문기관으로 등록됐다. 그동안 1044명이 거쳐 갔다. 더 이상 치료가 힘든 말기 암환자에게 병동의 문이 열려 있다. 입원하려면 ‘호스피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주치의 소견서가 필요하다. 1개월 기준 진료비는 45만원. 가족 한 명이 환자와 함께 상주할 수 있으며 숙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최대 환자 12명이 입원할 수 있다. 박영의 원장을 비롯해 간호사 7명, 간호조무사 2명, 사회복지사 2명이 환자를 돌본다. 의료진 외에도 60명 넘는 자원봉사자가 매주 호스피스 병동을 찾는다.

오덕영(79)씨는 교편을 내려놓은 뒤 16년째 춘천호스피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병동 주변 텃밭에서 고추와 배추, 상추를 기르는 게 그의 일과다. 무공해 채소가 환자들의 건강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까 하는 생각에서다.

오씨 역시 암환자다. 2012년 방광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당장 몸이 불편한 데는 없지만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씨는 “힘 다할 때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때가 되면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춘천호스피스는 의료진과 더불어 자원봉사자의 헌신으로 운영된다. 자원봉사자를 위한 교육도 매년 실시한다. ‘호스피스의 개괄적 이해’ ‘암에 대한 이해와 증상’ 등의 강의가 있다. 박상운 춘천호스피스 회장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의료진만큼이나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호스피스 병동의 활성화를 위해선 체계적인 자원봉사자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춘천=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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