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1부 ③] 품위있는 生의 마무리도  ‘바늘구멍’ 기사의 사진
1부: 호스피스, 나를 위한 선택
③ 턱없이 부족한 호스피스 병상


말기 암 환자 하모(72)씨는 두 달을 기다려 지난달 18일 고려대구로병원 호스피스병동에 들어갔다. 폐암 4기에 혈액암 전이 진단을 받은 지 10개월 만이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항암제를 견디지 못할 만큼 쇠약해지더니 올 1월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부랴부랴 집에서 가까운 고려대구로병원을 찾아 호스피스 입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여명이 대기 중이었는데 환자가 숨을 거둬야 자리가 나니 언제 입원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점철된 우리네 삶은 마지막까지 가혹하다. 하씨 같은 말기 암 환자는 생의 끝자락을 보낼 호스피스 병상마저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집과 응급실, 요양병원을 전전한다. 그러는 동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대기가 길어지면서 하씨의 병세는 급격히 나빠졌다. 정신력이 떨어져 가족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가족은 피가 말랐다. 딸(39)은 사흘 내내 매일 병동에 전화해 “아버지가 안 좋으시다”고 사정을 했다. 1인실에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병실료만 하루 30만원이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요양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 5인실 자리가 났다. 딸은 “조금 더 일찍 호스피스를 선택했다면, 대기하지 않고 바로 입원했다면 아버지 의식이 온전한 상태에서 가족과 함께 삶을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김모(68)씨도 지난달 28일 대구의료원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했다. 2012년 재발한 간암이 폐·목·대퇴부까지 전이됐는데 2014년 결핵에까지 걸려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삶의 의지가 강했던 김씨는 이보다 오래 버텼다. 지난달 통증이 악화돼 다시 병원 신세를 졌다. 아들(40)은 주치의의 추천을 받아 호스피스병동 서너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한결같이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요양병원에서도 ‘까다로운 말기 암 환자’란 이유로 기다려보라고만 했다. 발만 구르다 보름 만에 겨우 대구의료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다수 암 환자는 ‘빅5’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에서 치료하다 ‘말기’ 진단을 받으면 서울성모병원이나 고려대구로병원처럼 인지도 높은 병원의 호스피스병동으로 몰린다. 비싸도 시설이 좋고 믿을 만하다는 ‘큰 병원 만능주의’가 여기서도 통한다. 이런 병원에선 10∼30명 말기 암 환자가 평균 2∼3주, 길게는 두 달씩 입원을 기다리고 있다. 대기 기간이 길어져 끝내 자리를 얻지 못한 채 임종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해 7월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큰 병원뿐 아니라 중소병원 호스피스병동에도 ‘환자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간병 도우미’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선호도가 갈수록 크게 벌어진다.

보건복지부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도우미(간병 도우미)를 의무제가 아닌 선택제로 운영토록 했다. 전문 요양보호사 1명이 환자 3명을 돌볼 수 있도록 자체 인력을 갖춘 호스피스 기관만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받을 수 있다. 환자는 하루 8만5000원이던 간병비를 4000원만 내면 된다. 하지만 당장 간병 인력 충원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대다수 호스피스 기관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전국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 67곳 중 4분의 1(16곳) 정도만 간병 도우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환자들은 간병 도우미가 있는 기관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씨도 그런 경우다. 지난해 7월 간병 도우미 제도를 가장 먼저 시행한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상의 가동률은 60∼70%에서 90∼100%로 껑충 뛰었다. 서울서북병원도 지난해 11월 도우미제 도입 후 가동률이 20% 이상 높아져 환자가 줄을 섰다. 반면 간병 도우미가 없는 기관은 병상이 오히려 남아돈다.

김대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호스피스 병상의 양적 확충도 필요하지만 간병 도우미를 전면 의무화해 환자 쏠림 현상을 개선하고 비용 문제로 호스피스를 생각하지 못하던 환자도 임종케어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삶의 마지막 돌봄마저 큰 병원으로 몰리는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아 일부 기관의 과포화를 해소하고, 빅5 등 대형병원은 적극적인 암 치료를 끝낸 환자를 지역 호스피스 기관으로 원활하게 전원(轉院)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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