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양수 <6> 시각장애인 최초로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한빛맹학교 신설 고교과정 1기 입학… 고 강영우 박사 특강에 자극 받아 낮에는 학교서 밤에는 학원서 공부

[역경의 열매] 김양수 <6> 시각장애인 최초로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기사의 사진
1985년 8월 27일자에 실린 일간지 기사 내용. ‘김양수, 대입 검정고시 합격(맹인 수험생)’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1985년 한빛맹학교에도 고등학교 과정이 생겼다. 나는 1기 입학생이 됐다. 학교는 처음에 여러모로 미흡했다. 대부분 선생님이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학 진학을 위한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나도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점자를 늦게 배운 탓에 읽는 속도가 더뎠다.

하루는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로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까지 지낸 고 강영우 박사가 한빛맹학교에서 특강을 했다. 나는 ‘저분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강 박사님이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셨으니까 나는 한 단계 높여서 서울대학교에 가자’고 결심한 것이다.

고민이 생겼다. 고등학교 과정이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한빛맹학교에서는 서울대 진학이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고 한신경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대학 진학을 위해 낮에는 맹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교장 선생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하지만 한빛맹학교 선생님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맹학교에서 배우면 되지 왜 학원에 가느냐, 우리를 무시하느냐는 생각이었다. 선생님들은 내가 학원에 가는 것이 불법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5공화국 시절로 재학생은 과외가 금지돼 있었다. 맹학교 친구들의 반응도 싸늘했다. 시기하고 비아냥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한빛맹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전적으로 내 편이었다. 모든 편의를 봐주셨고 저녁에 학원에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검정고시 학원이 밀집한 서울 신설동으로 향했다. 처음에 그곳으로 가면서 시각장애인을 학생으로 받아줄 학원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고려검정고시학원 문상주 학원장님이 나를 받아주셨다. 특히 학원의 강성원 담임선생님은 나를 적극 지도해주셨다. 나는 이 학원에서 학원생 2000여명 가운데 1, 2위를 반복했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대입 검정고시를 보게 된 것도 원장님과 학원 선생님들이 도와주셨기 때문이었다. 문 학원장님은 서울시교육청을 찾아가 민원을 했다.

1985년 8월 나는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검정고시는 서울 석관중학교에서 감독관 선생님이 문제를 읽어주는 방식으로 치렀다. 내가 처음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자 시각장애인 검정고시 응시가 줄을 이었다.

이듬해인 1986년 11월엔 학력고사를 치렀다. 학력고사는 감독관이 옆에서 문제를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점자 시험지를 통해 치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나처럼 중도 실명자는 점자로 빨리 읽는 게 쉽지 않다. 결국 문제를 다 읽지도 못하고 답안을 제출했다.

시각장애인 중에서는 성적이 전국 1위였지만 서울대에 입학하기에는 부족했다. 지금은 특별전형이라는 게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교장 선생님은 단국대 특수교육학과에 가라고 했고 나는 순종했다. 선생님이 교사를 하도록 한 데는 다 뜻이 있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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