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알파고’ 왜 찜찜하지?… 전문가들 “생각의 틀을 깨자”

생각보다 빠른 진화에 충격… ‘달라질 미래’ 가늠못해 불안

‘똑똑한 알파고’ 왜 찜찜하지?… 전문가들 “생각의 틀을 깨자” 기사의 사진
일본과 축구해서 졌을 때처럼 왠지 찜찜하고 뭔가 불쾌했다. 월드컵도 올림픽도 아닌 이벤트일 뿐인데, 이세돌(33) 바둑 9단이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에 2연패를 당한 10일 다들 이렇게 얘기했다. “3차전도 지면 어떡하지?” 이런 찜찜함과 불쾌함, ‘지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오늘 우리 변호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세돌의 패배였다. 다들 ‘이제 우린 어떡하냐’는 얘기만 했다”고 말했다. 변호사의 최대 무기는 전문적인 ‘판례’ 지식이다. 그는 “좋은 판례, 유리한 판례를 찾아 사건에 인용하는 게 변호사의 일인데, 사건 정보를 입력하면 판례를 죽 찾아주는 인공지능이 이미 개발되고 있다. 알파고를 보면서 변호사들이 그 인공지능의 위력을 가늠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에서 기원을 운영하는 노진규(71)씨도 “알파고가 냉철하게 승부수를 띄우는 걸 보고 정말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 놀랐다”고 했고, 주부 이모(58·여)씨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 속 얘기가 이제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산업혁명 이후 가파른 기술 발전을 당연시해온 인간이 ‘세기의 대국’을 보며 그 기술의 파괴력을 다시 인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막연한 찜찜함을 넘어 기술이 인간의 삶에 가져올 변화를 근본적으로 고민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인간과 기계(인공지능)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사라지는 일자리’다. 산업혁명으로 생계를 잃은 영국 노동자들은 1811년 일자리를 앗아간 기계를 부숴댔다.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진 지 200여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비슷하다.

가구 공룡 ‘이케아’의 셀프 계산대, 전국에 2000여개나 있는 셀프 주유소, 사람 하나 없는 자동차 공장 등 기술은 사람을 대신하는 빠르고 정확한 ‘일꾼’을 만들어 냈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계화·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몇 백년간 이어져온 흔한 일”이라고 했다.

예언은 여러 번 있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WEF)에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향후 5년간 15개국의 약 500만개 일자리가 사라지리란 보고서가 나왔다. 같은 달 ‘유엔 미래보고서 2045’는 현재 일자리의 80%인 20억개가 2030년이면 사라진다고 했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제조업에서 기계가 못하는 영역이던 서비스업으로 옮겨갔다. 직업의 흥망은 산업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출구산업’이 아직 보이지 않는데, 기계가 서비스업까지 속속 침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법률, 의료, 야구심판, 헬스 트레이너 등 인간만 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일자리에 고도의 인공지능이 진출하고 있다”며 “오히려 복잡한 일은 기계에 넘기고 1차 산업으로 돌아가자는 주장까지 나오는데, 정확한 진단과 대비는 전무하다”고 했다.

기계 이면의 ‘인간’에 초점 둬야

암울한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번 대국이 생각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되리라는 진단도 나온다.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인간과 비인간을 나눠 생각하면 공포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며 “기계를 만든 사람이 오히려 기계에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해 왔다”고 지적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종갑 건국대 영문학과 교수는 이번 대국을 ‘인간 제국주의’를 내려놓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도구화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알파고의 승리에 두렵고 무서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간의 편리한 소통을 위해 만든 휴대전화가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지 않았느냐”며 “이건 휴대전화의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점차 기계도 인간처럼 학습하고 진화할 텐데 이를 부정하면 계속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기계가 아니라 기계를 조작하는 이면의 인간과 세력이 더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구글이 이벤트를 마련한 이유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축적된 데이터와 사람 같은 인공지능을 갖고 ‘구글이 뭘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바둑을 넘어 각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소수의 기업 등이 활용하게 되면 새로운 지배형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대국의 승패보다 이런 기술로 구글이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를 따져봐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인간은 어차피 안 돼’라는 패배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바둑 외에도 구글은 다양한 종목에서 인간과 기계의 대결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계가 이길 경우 처음에는 놀라지만 이게 반복되면 ‘어차피 질 것’이란 분위기가 만연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이에 대응하려면 인간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 인성, 감성, 심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늘려야 한다”며 “인간만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심희정 신훈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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