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윤중식] 예수님보다 더 인기 있다고? 기사의 사진
‘예스터데이’ 등 숱한 명곡을 빚어내 ‘5번째 비틀스 멤버’로 통하는 조지 마틴이 지난 9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틀스의 드러머였던 링고 스타(76)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하나님의 가호가 깃들기를 바란다. 주디(마틴의 부인)와 가족들에게 평화와 사랑이 있기를 기도한다”는 메시지를 가장 먼저 전했다.

비틀스를 발굴하고 이들의 음반 제작을 맡았던 마틴은 20세기 대중음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명프로듀서였다. 1963년 1월에 발매된 첫 음반 ‘플리즈 플리즈 미’부터 해체 직전 나온 ‘애비 로드’까지 대부분 비틀스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그는 다른 음반 제작자들이 외면했던 비틀스의 데모 음반에 주목해 이들을 발탁했다. 기존 드러머 대신 링고 스타를 영입하도록 하고 자작곡을 내도록 권유했다. 마틴은 편곡과 연주 실력도 탁월했다. 예스터데이에 현악기를 추가했고 ‘인 마이 라이프’에서는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엘리노어 릭비’ 현악 부분을 지휘하는 등 비틀스 음악 곳곳에 그의 숨결이 녹아들었다.

60년대 미국은 비틀스 열풍에 휩싸였다. 비틀스는 존 레넌(1940∼1980)을 중심으로 반전(反戰)운동 등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고 노래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들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히피족들은 거리를 활보하며 일부 젊은이들은 마약과 동성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비틀스를 그냥 두지 않았다.

66년 3월 존 레넌의 인터뷰 발언이 불씨가 됐다. “기독교는 사라지고 움츠러들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예수보다도 더 인기가 있다(We’ re more popular than Jesus now).” 이 발언은 몇 달 뒤 한 잡지에 실리면서 미국인들의 증오와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남부 내슈빌의 성난 군중은 비틀스 음반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뉴욕에서는 KKK단이 비틀스 사진과 그림을 갈가리 찢어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신문에서는 연일 비틀스를 비난했고 라디오 디제이들은 노래를 내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청취자들을 비틀스 반대운동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마침내 존 레넌은 유감을 표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일로 존 레넌 특유의 농담이나 건방진 태도는 일순간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해도 왜곡되는 상황 속에서 그 어떤 것에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는 심리적으로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일종의 환각 체험인 ‘애시드 트립’에 빠져들었다. 그는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오노 요코와 재혼하는 등 마이웨이를 선택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른 봄, 마틴은 구순의 이름표를 달고 세상과 이별했다.

“무릇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시 1:6) 성경에는 두 가지 길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의인의 길과 자신의 생각과 욕심대로 살아가는 길이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짊어진 존 레넌은 80년 12월 자신의 광적인 팬인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의 총에 맞아 숨졌다. 힘든 시절을 존 레넌과 함께한 조지 해리슨(1943∼2001)은 폐암을 이기지 못했다.

‘제5의 비틀스’의 별세를 계기로 비틀스 멤버들 각각의 삶을 돌아본다. 비틀스 멤버 둘은 먼저 가고 이제 폴 매카트니(74)와 링고 스타(76) 둘이 남아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비틀스의 수많은 노래들은 오늘도 불후의 명곡으로 세계 곳곳에서 불려지고 사랑받고 있다. 매카트니의 경우 지난해 서울에서 ‘렛잇비’ ‘헤이 주드’ 등 주옥같은 노래로 감동의 공연을 연출해 노익장을 과시했다. 먼저 간 친구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링고 스타의 모습에 고개가 숙여진다.

윤중식 종교기획부 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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