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EU, 터키에 돈 퍼주고 ‘난민 해결사’ 맡기나 기사의 사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마인 강가에 지난해 9월 그리스로 가던 중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어린이 에일란 쿠르디를 그린 그라피티가 11일(현지시간) 공개됐다. 당시 쿠르디의 시신을 찍은 사진은 시리아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려 큰 충격을 줬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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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민원을 해결해주겠다. 대신 사례비와 함께 나를 식구로 받아들여 달라.”

지난 7일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럽연합(EU)과 터키 간의 긴급 정상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다. 양측은 17∼18일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양측의 이런 만남들은 마치 용역 발주자와 용역회사가 접촉하는 듯한 모습이다.

EU는 ‘유럽의 숙제’인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동 국가인 터키에 대신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터키는 숙제를 대신할 테니 비용과 함께 자국을 EU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협상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했다. 1923년 공화국 수립 이후 유럽에 편입되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터키로서는 호기를 맞은 것이다.

EU의 용역 내용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쟁 지역을 제외한 난민이 더 이상 유럽에 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또 그리스에 도착해 발칸반도를 지나려고 대기 중인 난민들을 터키로 되돌려 보내면 맡아달라는 주문이다. 그리스에는 현재 3만여 난민이 있다. 그래서 일면 이번 협상은 서유럽의 ‘친구(그리스) 구하기’인 측면도 있다.

이에 터키가 내건 구체적 요구조건은 이미 자국에 들어온 200만∼300만 난민이 유럽에 가지 않도록 정착시킬 테니 정착비용 30억 유로(약 4조원)를 달라는 것이다. 이 돈은 원래 EU가 지난해 말 주기로 약속한 돈인데, 현재까지 1200억원 정도만 터키에 건넨 상태다. 터키는 이에 더해 지난해 이후 난민이 급증했고, 그리스 등 유럽에서 돌려보낼 난민까지 떠맡아야 하니 30억 유로를 추가로 달라고 요구했다.

EU는 ‘돈’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EU가 미적거리는 것은 터키가 추가로 요구한 8100만 터키인의 무비자 유럽여행 요구다. 터키는 오는 6월까지 자국민이 유럽 26개국에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EU 정회원 자격을 얻기 위한 절차를 앞당겨 달라고 터키가 주문한 것에 대해서도 EU는 망설이고 있다.

EU는 8100만 터키인이 여행이 아니라 취업 때문에 유럽에 밀려들까 걱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터키가 이슬람 국가여서 ‘이슬람의 유럽 진격’으로도 받아들이고 있다. 아울러 유럽의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한 구시대적 국가운영을 하고 있는 터키가 EU 멤버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터키 남쪽의 EU 회원국인 섬나라 사이프러스가 터키와의 영토 분쟁을 이유로 터키의 EU 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17∼18일 어떻게든 양측은 절충할 가능성이 높다. 터키가 시리아 쪽 국경 통제를 느슨하게 해 난민이 더 많이 유입되거나 자국내 불법 난민에 대해 압박을 가할 경우 난민들의 유럽행은 더욱 가속화되고, 어쩌면 따뜻한 봄이 되면 유럽의 난민 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 최근 터키의 언론 및 인권 탄압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도 그런 기류를 반영한다.

결국은 ‘생존권과 인권 문제’인 난민 이슈가 유럽의 손을 떠나 ‘거래의 영역’으로 넘어간 뒤, 제삼자라 할 수 있는 용병 터키의 처분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 상황이 마치 선진국의 ‘3D(difficult danger dirty·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업종’이 후진국으로 넘어가는 양상과 많이 닮아 있어 씁쓸하다.

손병호 차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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