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1부 ④] 암 아닌 말기환자 내년 8월부터나 ‘평안한 이별’ 기사의 사진
1부: 호스피스, 나를 위한 선택

④ 암 아닌 말기환자는 어떻게


술을 즐기던 김모(75)씨는 2009년 1월 순천향대병원에서 알코올성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의식이 흐려지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간성혼수’ 증상을 보였다. 간 기능과 증상에 따라 간 장애 정도를 분류하는 ‘차일드 퓨’ 등급에서 중간 정도인 ‘B’를 받았다.

그해 3월 합병증인 십이지장 정맥류 출혈로 두 차례 입원했지만 그래도 견딜 만한 시절이었다. 두 달에 한 번 외래진료를 받고 이뇨제·간장약 등을 먹으면 됐다.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진 건 2011년부터였다. 2012년에는 하체가 붓고 힘이 빠져 발목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김씨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김씨는 차츰 활기도, 말도 잃었다.

김씨가 ‘내년 여름’까지 버텨야 하는 까닭

그는 2014년 결국 C등급 판정을 받았다. ‘말기’란 뜻이다. 1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간성혼수가 올 때마다 1∼2주씩 입원하는 게 일상이 됐다. 집에 머물고 싶어 했지만 빠르게 차오르는 복수를 빼고 관장도 하려면 병원이 나았다. 입맛을 잃어 식사를 거의 못하는 상황이라 입원을 해야 그나마 영양제를 맞거나 저염식으로 끼니를 챙길 수 있기도 했다.

말기 간경화 환자의 유일한 희망은 간 이식인데, 그마저도 고령에 쇠약해진 상태라 단념했다. 1억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감당할 엄두도 안 났다. 월 200만원 가까운 입원비 대기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무릎관절이 좋지 않은 아내 하모(72)씨는 자기 몸을 돌볼 틈이 없었다. 체격 좋은 남편의 병시중을 혼자 하는 게 힘에 부쳤다. 주치의가 요양병원이 어떻겠냐고 권했지만 하씨는 불안했다. 암 말기환자와 달리 손이 많이 가는 간경화 말기환자를 반길 것 같지 않았다.

김씨는 올 1월 말 간성혼수가 급격히 악화돼 구급차에 실려 온 뒤로 지금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하씨는 “같은 병실의 암 환자가 호스피스로 간다더라”며 “투병에 지친 남편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삶을 정리할 수 있게 내년 8월까지 꼭 버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슬픈 얘기지만,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평하지 않다. 호스피스를 통해 소중한 사람들과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암 환자와 달리 김씨 같은 다른 질환 말기환자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웰다잉법)이 제정되면서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내년 8월부터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간경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말기환자도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이 병마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다 마무리 시기에 이른 환자들은 종합병원, 요양병원, 집 사이를 구급차로 오가며 몸처럼 마음도 상했다. 말기 암 환자보다 까다롭고 조심스럽다는 이유로 요양병원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들이 마지막 평안을 얻으려면 어떻게든 내년 8월까지 버텨야 한다.

“COPD 판정 이후 모든 걸 다했다…평안한 이별만 빼고”

김모(48·여)씨의 아버지(77)가 COPD 진단을 받은 건 2011년이었다. 폐와 기도에 만성 염증이 생겨 폐기능이 점차 떨어지고 나중에는 숨 쉬기도 힘들어지는 병이다. 10년 전 방광암 판정을 받고 5차례 수술한 뒤 뇌졸중까지 앓은 터였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면서 기관지와 폐로 이물질이 들어가 ‘흡인성 폐렴’이 왔다. 갑자기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쉴 새 없이 기침을 했다.

증상은 점차 심해져 기침 횟수가 늘고 삼킴 장애가 왔다. 1년여가 지나자 침대에서 콧줄을 통해 식사하거나 위에 관을 꽂아 포도당을 주입해야 했다. 김씨가 1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주고 흘러나온 변을 처리했다. 폐에 찬 가래는 의료용 석션기로 뽑아냈다.

산소호흡기 대여비, 약값, 검사비 등 5년간 수억원을 치료에 쏟아 부었다. 페렴이 오면 최소 6개월은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대기자가 많은 다인실에 마냥 있을 수도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 20만원짜리 2인실을 쓰는 통에 지난해 11월에만 1000만원 넘게 들었다.

집에서 침대와 호흡기치료기 등을 갖추고 돌보기도 했다. 월 250만∼300만원 간병비가 부담스러워 간병인은 따로 두지 못했다. 대신 김씨가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폐질환을 잘 모르는 요양원과 일부 의료진에 불신이 깊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김씨는 서울 동대문구 한 병원의 호스피스병동을 찾았다가 말기 암 환자가 아니라서 거절당했다. 방광암은 말기가 아니었고 폐질환은 대상이 아니었다. 그해 12월 중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주치의 얘기를 들었다. 해열제 혈압약 항생제 투약을 멈추고 아버지를 집으로 모셨다. 석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는데, 편히 보내드리지 못한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누리지 못한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이라도…”

발열·인후통·근육통 등을 몸살처럼 앓고 나면 괜찮아진다. 에이즈 초기 증상은 그렇다. 이후 10년쯤 잠복기가 이어지는데 증상 없이 ‘CD4양성T림프구’(면역세포)가 계속 파괴된다.

악명과 달리 에이즈는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병이 아니다.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센터장은 “에이즈는 암처럼 비가역적이지 않고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처럼 꾸준히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상일 경우 600∼700인 CD4 수치가 200 이하로 현저히 떨어지며 암·결핵 등 각종 2차 질환에 감염되는 말기 상태다. 병상 신세를 지는 것도 이때부터다. 이런 합병증이 결국 에이즈 환자를 임종에 이르게 한다.

여기에 다른 질환과 달리 소외감이 더해진다. 말기 환자는 합병증이 악화되기 전까지 지낼 만한 병원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야 한다. 에이즈 바이러스 전파력은 B형 감염보다 낮은데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다. 에이즈 환자 10여명이 머무는 경기도의 한 병원 관계자는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말기를 견디는 다른 질환자와 달리 에이즈 환자는 가족도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말 일반 병원에 입원한 에이즈 환자가 요양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요양병원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공포했다. 그러나 요양병원들은 “다른 환자들에게 감염될 가능성 등을 이유로 에이즈 환자는 전문병원이나 지정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래저래 설자리를 찾기 어려운 상태다.

한국에이즈감염인연합회 손문수 대표는 “존엄한 삶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 에이즈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통한 존엄한 죽음이라도 허락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수민 박세환 신훈 기자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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