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후쿠시마의 비극과 이웃 나라의 냉소 기사의 사진
대장암 3기였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투병은 시작이었다. 언제 재발할지 몰라 하루하루 불안해했다. 병간호에 가장 노릇까지, 어머니는 옆에서 두 사람 몫을 살았다. 그렇게 한두 해가 지났다. 아버지는 여전히 환자지만 여전히 아버지다. 가족 모두 그렇게 암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동일본 대지진 5주년을 맞아 지난 6일 일본 후쿠시마현을 찾았다. 취재 도중 줄곧 암 환자 그리고 가족을 떠올렸다.

현지 주민들은 여전히 지진과 원전사고의 기억을 잊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괜찮다’고 끊임없이 스스로 되뇌고 있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게 분명한 재난의 후유증에서 애써 눈 돌리며 앞으로 나아가려 애썼다. 암 수술을 한 환자가 자기 몸의 이상을 알면서도 삶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는 모습 같았다.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고 발버둥치는 듯했다.

반감기(방사능 물질농도가 반으로 감소되는 데 걸리는 시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방사능 누출, 사고는 불과 5년 전이고 오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피해는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당면한 현실로 엄습한다. 뜬금없이 튄 불똥에 맞아 느끼는 분노와 불안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 국민은 아직도 ‘일본’ 하면 방사능부터 떠올린다.

피해 주민과 인접 피해국들에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 없이 ‘이제는 안전하다’고 소리 높이는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가 한심한 것도 맞다. 대재난과 국민 불안을 동력 삼아 우경화·보통국가화를 모색하고, 또 국가와 거대 기업의 이해타산에 매몰된 부흥일변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불안 가운데서도 질서정연하게 일상으로 돌아온 주민들, 피해 복구를 위해 현장에서 애쓰는 공무원·작업자들의 땀방울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호감 때문일까. 미미하게나마 ‘희망’을 조명하는 일본이나 우리 언론의 보도에 쏟아지는 일부 네티즌의 과도한 냉소와 비난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암에 걸렸다고 해서, 치료가 힘들고 지난하다 해서, 부작용이 우려된다 해서 넋 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는 없다. 하물며 수백만 현지주민은 마치 ‘암 환자’ 같은 고향과 삶을 마주하고 있다. 이를 되찾겠다고 애쓰며 꿈꾸는 작은 희망마저 ‘자업자득’으로 폄하와 비웃음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암은 병이 진행될수록 본인뿐 아니라 가족 등 주변까지 ‘전이’돼 지치고 아프게 만든다. 때문에 투병이 길어질수록 슬픔과 절망에 매몰되고 환자와 보호자의 구분도 희미해진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가족이니까.

가족을 선택할 수 없듯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웃 일본을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분개와 지탄이 앞선다 할지언정 후쿠시마의 비극과 방사능 문제는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자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의 부주의와 무책임을 성토하고 비판적 관점에서 방사능 피해의 확산과 재발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는 놓지 말아야 한다. 다만 방사능이라는 종양과 싸우며 희망을 건져내려는 후쿠시마 주민들의 노력에는 순수하게 작은 응원이라도 보내줬으면 싶다.

후쿠시마=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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