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생애 첫 아프리카 봉사 떠난 ‘기부 여왕’ 하춘화 “수익금 기부가 내 공연의 마무리” 기사의 사진
‘한국 가요계 여왕’이자 ‘기부 여왕’으로 유명한 하춘화가 “이번이 첫 아프리카 봉사활동이라 설렘도 크지만 걱정도 된다.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잠비아 어린이들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계기가 될 듯하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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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주름살 없는 얼굴에 눈빛은 맑았다. 생글생글한 웃음에 뽀얀 피부,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너무 젊어 보인다”고 하자 반세기 동안 대중의 인기를 받고 자라 늙을 시간이 없었다고 받아친다. 사진기자의 포즈 요구에 대뜸 검은 외투를 벗는다. 사진이 잘 안 받기 때문이란다. 화사한 스웨터가 드러나자 그제야 카메라를 응시한다. 포즈는 자연스럽고 능수능란했다. 역시 프로다웠다. 올해 데뷔 55년을 맞은 가수 하춘화(61)다.

라디오를 통해 들은 가요 300여곡을 세 살 때 흥얼거렸다고 한다. ‘가요 신동’ 소리를 들으며 여섯 살 때인 1961년 ‘효녀 심청 되오리다’로 데뷔해 ‘물새 한 마리’ ‘잘했군 잘했어’ ‘영암 아리랑’ ‘나이야 가라’ ‘꽃마차’ ‘날 버린 남자’ 등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한국 가요계 여왕으로 불린 그다. 그의 이름 앞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최연소 데뷔’ ‘리사이틀의 여왕’ ‘연예인 1호 박사’ ‘기네스북 등록 가수’ 등등.

그는 40여년 동안 공연 수익을 꾸준히 기부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월 데뷔 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하춘화 노래 55 나눔·사랑 리사이틀’ 수익금 1억2000여만원도 전액 기부했다. ‘기부 여왕’답게 지금까지 누적 액수만도 200억원이 훌쩍 넘을 정도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나눔과 사랑으로 살아온 셈이다.

지난 10일부터는 아프리카 남부 잠비아로 첫 해외 봉사활동까지 떠났다. 비행기에 오르기 하루 전 그를 1시간 동안 만났다. 거침없는 달변에다 예사롭지 않은 언어구사 능력에 또 한 번 놀랐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어떤 활동을 하나.

“두 달 전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으로부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국내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굳이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민 중이던 차에 ‘꼭 갔으면 좋겠다’며 수차례 사정해 그럼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와 1주일 동안 현지에 머물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이번 봉사활동이 식량과 물 부족으로 기아와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잠비아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첫 해외 봉사활동이라 설렘도 크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나눔과 사랑을 몸소 실천해 왔는데.

“중학교 3학년이던 열여섯 살 때 ‘물새 한 마리’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때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더니 ‘지금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나중에라도 좋은 일로 사회에 환원해라. 대중가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그런 인식을 바꾸는 데 네가 중요한 역할을 해라. 그리고 동료나 후배들이 본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나를 가수로 키워주신 분이다. 그때는 그저 아버지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즉 사명감이나 책임감으로 느껴진다.”



-기부는 어떤 식으로 하나.

“기념될 만한 공연을 갖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1974년 첫 단독 공연 때 얻은 수익금은 당시 경기도 안양에 있던 나환자촌 ‘나자로 마을’에 기부했고, 데뷔 50주년 때는 다문화가정 나눔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했다. 데뷔 55주년인 올해 수익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액 내놓았다. 내 공연은 무대의 막이 내려질 때가 아니라 공연 수익금이 기부될 때 비로소 마무리된다. 공연에서 얻는 돈을 내 돈이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를 사랑하는 대중이 공연을 즐기며 주고 가신 돈은 좋은 일,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신념이다. 어쩌다 한 번 선행은 할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도 필요한 듯하다. 선행은 돈이 많거나 남아돌아서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처음에는 남몰래 기부했다고 하던데.

“자랑할 일도 아니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듯이 기부 활동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당시 문화공보부 이진희 장관을 만나면서부터다. ‘유명인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좋은 일을 하면 다른 사람도 따라 할 것이다. 본인의 활동을 널리 알리면 다른 사람의 기부로 이어질 수 있다. 감추지 말고 많이 알려 달라’고 하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기부활동을 공개적으로 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선 공연을 할 때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수익금을 전달하곤 했다.”



-데뷔 시절이 궁금하다.

“세 살 때부터 가요 신동이 났다고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아버님이 제대로 교육시켜야겠다고 당시 가장 큰 음반제작 전문업체인 지구레코드에 데려갔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가수, 작곡가들이 다 모인 곳이었다. 첫 반응은 ‘무슨 꼬마가 여기에 왔냐’며 피했다. 그런데 한 작곡가 선생님이 ‘노래 한 번 해 보라’고 해 당시 가장 유행하던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멀리 떨어져 있던 선생님들이 신기한 듯 한 분 두 분 모이더라.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고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앨범을 내게 됐다. 지금도 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한국 대중가요의 산증인으로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 ‘한양의 천리원정’ ‘알뜰한 당신’으로 명성을 날렸던 황금심 선생님이 나의 제1멘토다.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라고 본다. ‘산 너머 남촌에는’을 비롯한 다수의 히트곡으로 60년대를 풍미한 박재란 선생님이 제2의 멘토다. 나도 벌써 반세기 이상을 노래했는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다.” (하춘화를 데뷔 때부터 봐 온 송해는 “하춘화의 노래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그때그때 사회상과 살아가는 변천사, 국민과의 관계가 모두 내포돼 있다”고 평했다.)



-대중가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내가 네 자매 중 둘째 딸이다. 다 박사다. 아버지는 집에 딸들의 박사학위 증서를 액자로 나란히 걸어두었다. 두 번째 자리는 비워뒀는데 바로 그게 내겐 짐이었다. 집안 분위기로 봐서 당연히 나도 박사 학위를 따야 했다. 그래서 서른여덟 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학부 3학년에 편입해서 박사까지 12년 걸렸다. 1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도서관으로 출근했고 잠자는 시간도 4시간 남짓이었다. 그 결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

“지방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5월 7, 8일 각각 고양과 수원에서 55주년 공연을 한 뒤 12월 9, 10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자선·나눔 리사이틀 공연을 다시 할 계획이다. 데뷔 60주년이 되는 2021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 공연을 성대하게 할 생각이다. 궁극적으로는 대중가요 발전에 기여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 외국에는 줄리아드 같은 유명한 음악 학교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학교가 아직 없는 것 같다. 과거에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딴따라’ 등으로 부르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후배들이 대접받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싶다. 후배들이 마음껏 능력을 쌓을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중음악 전문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하춘화는 누구…

가수생활에 뛰어든 지 어언 반세기가 넘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스타의 자리를 지켜온 그의 장수 비결을 무엇일까.

지독한 연습벌레에다 한번 하면 뿌리를 뽑는 성격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연습을 가장 많이 하는 가수가 바로 하춘화다. 60세가 넘었지만 지금도 변함이 없다. 데뷔 55주년 공연에서는 3분에 불과한 탭댄스를 보여주기 위해 3년 동안 탭댄스에 열중해 마스터했을 정도다. 젊은 사람도 힘든 연습을 소화하느라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1991년에는 최다 콘서트 기록(8500회)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201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전남 영암이 고향으로 경남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에서 공연예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95년 당시 KBS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이인순씨와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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