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누가 노동시장 개혁 불씨를 꺼버렸나 기사의 사진
지난 10일 19대 국회가 사실상 종료되면서 ‘노동개혁 4법’이 언제 빛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이 법안들의 입법취지와 내용 일부는 당면한 위기 극복에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어렵사리 이뤄진 ‘9·15 노사정 대타협’ 합의사항뿐만 아니라 합의되지 않은 재계 요구안과 정부안을 노동 관련 5개법 개정안에 포함시켜 국회에 제출했다. 노동계와 야당이 극력 반대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여당이 이들 법안을 밀어붙인 것은 애초 협상할 의지가 없었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

5개법 개정안의 합의통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거의 분명해진 지난달 18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개최한 집담회에서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모처럼의 사회적 합의가 무력화된 것은 노사정 당사자 간의 낮은 신뢰와 정치권의 타협능력 부족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신뢰의 고급 세단이 아닌 저신뢰의 티코(경차)를 타고 광범위한 원샷의 대타협을 단기간에 한다는 것은 (경차의 한계를 무시한 채) 시속 200㎞로 달려서 엔진과열, 경로이탈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비록 낮은 수준의 합의만을 태웠고, 그나마 경로를 벗어나긴 했지만, 법안들에 담긴 노동시간 단축 일정과 고용보험 확대 항목들은 대표적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로서 시급히 해야 할 것들이다. 즉 오랜 세월 장시간 노동의 빌미가 돼 온 기준·초과노동시간의 예외조항들을 단계적으로나마 축소하는 과제, 그리고 20여년 동안 물가상승을 반영하지 못한 채 거의 동결되다시피 했던 실업급여 지급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노동시장 개혁의 첫걸음이다.

누구나 공감할 우리나라의 큰 문제를 꼽아보자. 청년실업, 노인빈곤, 저출산, 비정규직 문제 등이 사실은 모두 극심한 소득 불평등에서 비롯되거나 그것의 결과로 빚어진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국민총소득 중 가계소득 분배율은 71%였으나, 2014년에는 62%로 줄었다.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원천적 분배, 즉 시장 안에서의 소득분배와 사후적 분배, 즉 복지를 통한 재분배 등 두 가지다. 국가재정의 한계와 조세저항을 생각할 때 사회복지 지출의 급속한 증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선 시장 내 소득분배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역시 두 가지다. 기업 간, 기업·소비자 간 거래의 공정성이 하나고, 기업규모별, 정규·비정규직 간 임금의 격차 해소가 다른 하나다. 그러나 기업생태계 안에서 대기업과 상위재벌로의 부의 집중은 더 심화되고 있다. 임금격차도 더 확대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말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과제는 임금의 공정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야 부당한 임금격차와 소득불평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적 방안으로 대기업 노조의 양보와 해고의 유연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이미 충분히 유연하다. 임금을 유연하게 하되 고용안정성은 높이는 게 답이다. 또한 비정규직 남용을 막고, 차별 시정절차를 효율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더 근본적 방안은 노조를 활성화해 기업이득 배분에서 노동의 몫, 즉 노동소득 분배율을 높이는 것이다.

노사정위에서 고용노동부, 경제부처 및 청와대로 올라갈수록 본질적 개혁과제로부터는 눈을 돌리는 정도가 심하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청와대는 고용과 임금의 유연성 확보라는 재계의 숙원을 반영하는 데 집착했다. 경제관료의 경제력 집중 맹신을 비판하곤 했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경제관료들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들이 노동시장 개혁을 망쳤고, 앞으로도 개혁을 가로막을 것이다.

hnglim@kmib.co.kr

임항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