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와 순종, 사명과 화해의 이야기 있는 길 위의 묵상

‘제주 기독교 순례길’ 69.8㎞를 아시나요… 4개 코스서 만난 교회 6곳

순교와 순종, 사명과 화해의 이야기 있는 길 위의 묵상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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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로 향하는 800㎞ 순례길은 연간 600만명이 다녀가는 명소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엔 더 많은 사람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노랑 화살표를 따라 걷고 있다.

국내에는 총 421.9㎞에 이르는 제주 올레길이 있다. 방문자들은 파랑과 주황색 화살 표시를 따라 걷는다.

제주엔 또 하나의 길이 있다. 총 4개 코스 69.8㎞의 짧은 거리지만 여기 올레길에는 없는 풍부한 스토리로 가득하다. 순교와 순종, 사명과 화해의 이야기를 품은 ‘제주 기독교 순례길’이다. 순례자들은 크리스천의 전통적 표지인 물고기 모양 표시를 따라 걷는다. 20일 종려주일을 지나면 본격적인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제주 순례길을 따라가며 그리스도가 짊어졌던 고난을 묵상해보면 어떨까.

국민일보는 지난 14일 제주 순례길 1∼4코스에 걸쳐 있는 주요 교회 6곳을 방문했다. 스마트폰 ‘제주순례길’ 앱을 다운받으면 역사와 현장 이야기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제주 기독교 순례길은 금성교회(제주시 애월읍 금성하안길)에서 시작한다. 교회와 주변 마을은 제주 기독교 역사의 첫 페이지다. 제주의 첫 선교사 이기풍 목사가 1908년 입도하기 전부터 예배모임이 존재했다. 평양 숭실학교 출신 청년 조봉호가 예배를 인도했으며, 모임은 조봉호의 집을 비롯해 금성교회가 배출한 첫 목회자인 이도종 목사의 부친 이덕련의 집에서 이뤄졌다.

지금의 금성교회는 붉은색 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교회 정문 쪽으로 다가가자 ‘제주순례길’ 안내판이 보였다. 이날은 교회의 휴일인 월요일이었지만 교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교회당 내부엔 녹슨 교회종이 보관돼 있다. 옛 교회당에서 사용하던 종이다. 교회를 나와 400m를 걸어가면 옛 금성교회 예배당을 만난다. 70년대에 지어진 교회의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구절이 나타났다. 폐허처럼 보이던 예배당은 순식간에 달라보였다. 말씀의 힘은 분위기를 압도했다. 제주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은 썩지 않았다. 부활의 열매를 맺어 온 제주로 퍼져나갔다.

교회의 첫 예배인도자 조봉호는 3·1운동 때 옥사했고, 이도종 목사는 48년 4·3사건 때 순교했다. 4·3사건은 광복 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남로당원들과 일부 제주도민이 항거를 일으키자 정부가 토벌대를 투입하면서 곳곳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지면서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기독교인 17명이 사망했고 교회 5곳이 불타는 등 교회도 고초를 겪었다. 이 목사는 재산(在山)무장대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금성교회에서 제주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5.5㎞를 이동하면 한림교회(제주시 한림읍 한림로)를 만난다. 일제 강점기 중엽부터 한림항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이 교회는 1915년 11월 2일 창립됐다. 42년 한림교회에 부임한 서귀포시 중문 출신 강문호 목사는 ‘침묵 설교’로 유명하다. 그는 주일예배에서 찬송을 부른 뒤 침묵으로 말씀을 전하고 신자들도 침묵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일제가 일본말로 예배를 드리라고 지시하자 침묵 설교로 맞선 것이다. 교회당은 일본군 막사로 사용돼 군인들이 드나드는 등 수치를 감내해야 했다. 교회는 6·25전쟁 이후인 54년, 유치원을 개설해 어린이 신앙교육을 도왔고 59년엔 여자 농민학교를 열어 농촌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99년부터는 사회복지법인 한림소망의집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회당 입구엔 사각형 돌에 십자가를 배경으로 ‘믿음에 굳게 서라’는 청년회 표어가 조각돼 있다. 풍파에 깎여나가긴 했지만 굵은 글씨는 여전히 선명했다. 하나님의 음성이 굵은 목소리로 다가왔다. “(너는) 믿음에 굳·게·서·라.”



한림교회에서 조수교회(제주시 한경면 조수길)로 이동했다. 이 교회는 1932년 김재선 목사가 창립했다. 교회는 4·3사건 당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려준 ‘한국의 쉰들러’ 조남수 목사의 고향 교회이기도 하다.

설립자 김 목사는 교회를 세우고 6·25전쟁 때 목포형무소의 형목으로 있다가 공산군에게 피살됐다. 교회는 2007년 12월 신고딕 양식의 예배당 건물로 탈바꿈했다. 교회 앞마당과 커다란 팽나무가 인상적인 이 교회는 순례자의 발길을 한참 동안 머물게 한다.



조수교회에서 대정교회(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는 20㎞ 거리로 제주 서중부에서 남부로 향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를 와 거처하던 초가가 교회 바로 옆이다. 대정교회 입구 왼편에는 ‘순교자 이도종 목사 성지’라고 씌어 있다. 교회 앞마당엔 제주 최초 목사 이도종의 순교비와 무덤이 있다. 교회는 이 목사가 마지막으로 목회했던 곳이다. 무덤은 생매장 당했던 그의 시신을 화장해 사모 김도전과 함께 합장했다. 유해 봉안비 마지막 줄에는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영광의 부활로 일어서리’라고 쓰여 있었다. 교회 앞마당엔 2m 높이의 나무십자가와 교회종,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조성돼 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이 목사의 삶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는다.

이도종 목사는 3·1운동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독립희생회 제주지부를 결성, 상해임시정부 군자금 후원 모금 활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목회자로 부름 받은 후에는 제주노회 창립, 제주성경학원 설립 등으로 제주 복음화에 힘썼다. 1944년부터 광복 이후까지 강문호, 조남수 목사 등과 함께 제주 전역을 순회하며 교회 회복에 매진했다. 4·3사건 직후 중간산 지역 교회와 교인을 돌보다 무장대에게 붙잡혀 순교했다.



대정교회를 나와 강병대교회(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대서로)로 향했다. 교회는 6·25전쟁 당시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되면서 훈련 장병의 정신력 강화를 위해 설립된 ‘군인교회’다. 훈련소장이던 장도영 준장이 52년 9월 건립했다. 강한 장병을 육성한다는 의미에서 강병대교회로 이름 지었다. 교회는 민간 건축가 참여 없이 공병대가 직접 건축했다. 제주산 현무암을 사용해 벽체를 쌓고 목조 트러스 위에 함석지붕을 씌웠다.

교회는 치열한 전투 현장으로 떠나기 전 수많은 병사의 기도가 이루어졌던 역사적 장소다. 1·4후퇴 이후엔 많은 피난민이 제주에 몰렸을 때 피난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교회는 지금도 예배를 드린다. 모슬포 지역 공군과 해병대 장병들이 매주 수요일과 주일, 예배를 드린다. 교회 측에 따르면 27일 부활주일에는 60년 만에 지역교회와 함께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교회당은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로도 등록돼 있다. 교회당 외부에는 53년 3월 20일 촬영한 연합예배 사진과 설명이 전시돼 있어 과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모슬포 지역은 현재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를 가리킨다. 공군부대와 해병부대가 있으며 과거엔 강병대교회 자리에 육군 1훈련소가 있었다. 동쪽으로 1.5㎞만 가면 알뜨르비행장 터를 만난다. 일제의 군사시설인 격납고와 벙커 등을 만날 수 있다. 일제는 1920년대 중반 모슬포 지역 주민들을 동원해 활주로와 비행기 격납고, 탄약고 등을 지었다. 순례자들은 전쟁의 아픔을 실감할 수 있다. 전쟁의 아픔은 모슬포교회가 가진 이야기 속에서 화해의 대단원을 이룬다.



모슬포교회(서귀포시 대정읍 하모이삼로)는 이기풍 목사가 세웠다. 일제 강점기엔 광선의숙이란 학교를 만들어 많은 지도자를 배출했다. 모슬포교회는 담임이던 조남수 목사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4·3사건 갈등 속에서 재산무장대와 군경 사이의 치열한 대결이 오가는 가운데 무장대에 연루됐던 사람들이 경찰 조사에 응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기독교 목사입니다. 나를 믿고 자수할 사람은 따르시오”라 했고 여기서 수많은 사람이 싸움을 피하게 되어 생명을 잃지 않았다 한다. 모슬포교회는 두 개다. 옛 교회당과 현재 교회당이 공존한다. 붉은 벽돌 교회당 내부로 들어가면 ‘사료전시관’이 있다. 100년이 넘은 제주 교회의 역사와 4·3사건, 6·25전쟁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수교회 김정기 목사 “제주 자연도 훌륭하지만 100여년 교회 역사 순교정신 소중”

“보는 것만큼 알게 됩니다. 제주에서 자연만 즐기려 한다면 많은 것을 놓칩니다.” 지난 14일 제주 조수교회에서 만난 담임 김정기(65) 목사는 “제주는 100여년 교회 역사와 한국 근대사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조수교회는 올해로 84년이 됐다. 모슬포교회의 담임이었던 조남수 목사의 출신 교회이기도 해서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다. 최근엔 스코틀랜드풍의 이국적 교회당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이 많아졌다. 조수교회를 거치는 순례객은 개인과 가족, 단체 등 1년에 1500여명 규모다. 김 목사는 순례객들의 요청에 따라 제주 기독교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제주도 크리스천 순례길’(예영커뮤니케이션)이란 책을 펴냈다. 92쪽 분량의 소책자 형태인 책은 제주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다. 2012년 한 해 동안 20여 군데 기독교 유적지를 직접 찾았고, 걸으며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6점의 그림을 그려 책에 담았다.

김 목사는 순례의 방향을 강조했다. 제주 서북부(금성교회)에서 남서부(알뜨르비행장)까지 이어지는 수직 방향이다.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산티아고길이 야고보의 무덤까지 가는 분명한 방향이 있는 것처럼 제주 순례길도 방향과 목표가 있습니다. 토착 기독교인에 의해 시작된 교회와 기도처, 순교의 현장, 그리고 전쟁과 국가의 존립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지로 연결되는 겁니다.” 그는 “아직도 제주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 많다”며 “순례길 여정을 통해 이야기를 접해 보라”고 권했다.

김 목사는 1990년 제주도로 내려와 목회를 했고 1996∼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과 컨콜디아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조수교회 담임을 맡고 있다. ‘예술 목회’를 지향하는 교회는 2009년부터 ‘제주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제주=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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