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인공지능 심포지엄 열린 코엑스 기사의 사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적인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대국이 열린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한국과 서울, 대국 장소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에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됐다. 내외신 기자들이 대거 몰려 대국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바둑 대결이 끝난 지 하루 만인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인공지능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인공지능 분야 선두 기업인 IBM 관계자들이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 ‘왓슨’을 운영·관리하는 롭 하이 최고기술책임자는 ‘인지 컴퓨팅의 미래, 왓슨’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내로라하는 인공지능 업계 관계자들은 코엑스라는 이름을 확실히 기억했을 것이다.

굵직굵직한 국제회의가 수시로 열리고 있는 코엑스는 국제 명소로 자리 잡았다. 코엑스를 방문하는 내외국인도 엄청나게 많다. 한국인이라면 코엑스를 국내외에 적극 알릴 책무가 있다. 선진국 시민들은 자국의 명소를 알리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한다. 보수도 받지 않고 자원봉사자로 나선다. 애국심의 발로 아닐까 싶다.

코엑스가 서울시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있다. 서울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 역명이 논란 속에 봉은사역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강남구의 역명 선호도 1차 조사에서는 ‘코엑스’가 1위로 나왔다. 봉은사가 여론조사에 조직적으로 개입하면서 2차 조사 때 1위가 ‘봉은사’로 변경됐다. 봉은사 주지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봉은사역명’ 제정을 요구해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고 불교계 언론이 보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박 시장은 ‘봉은사역’을 확정·고시했다. 당연히 정교(政敎) 유착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자 강남구 주민들이 코엑스역명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역명 개정 운동에 나섰다. 이 위원회 위원장은 불교 신자인 김상호씨다. 그냥 평범한 신자가 아니라 불교를 깊이 연구한 포교사다. 김 위원장이 봉은사역명 개정에 나선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그는 “국격(國格)을 생각해서라도 이 지역의 대표적 공공시설인 코엑스역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위원회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자 강남구가 최근 역 반경 500m 이내의 주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가장 적정한 역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민들은 ‘코엑스역’ 58.2%, ‘코엑스(봉은사)역’ 18.3%, ‘봉은사역’ 13.3%, ‘봉은사(코엑스)역’ 8.0% 순으로 응답했다. ‘코엑스역’과 ‘코엑스(봉은사)역’을 합치면 76.5%에 달한다. 이 조사결과는 행정절차를 거쳐 서울시로 넘어간다.

일부에서는 설문조사에 응한 주민(791명)이 너무 적다고 지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트가 실시한 온라인 투표 결과를 보면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 투표 결과 ‘코엑스역’이 55%로 ‘봉은사역’ 45%를 10% 포인트 앞섰다. 총 투표수가 116만표를 넘었고, 한 사람이 최대 10표까지 행사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11만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누가 봐도 코엑스역이 타당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결과다.

박 시장은 거물급에 속하는 정치인이자 수도 서울을 책임지는 행정가다.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군에도 올라 있다. 그런 박 시장이 시민의 뜻과 다른 역명을 고시하고 모른 척하고 있으면 안 된다. 박 시장이 정교 유착 논란에서 벗어나고 민의를 수용할 생각이 있다면 봉은사역을 코엑스역으로 바꿔야 한다. 어깃장을 부리며 민의를 거역한다면 민의에 의한 준엄한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 코엑스역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박 시장의 결단을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