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성규] 나는 아빠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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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3살 딸아이가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고층의 무균실 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는 하루빨리 딸과 함께 지상에 발을 딛고 싶었다. 한 달 동안 집중 치료를 끝내고 잠시 퇴원했다. 그리고 ‘1주일 입원-1주일 휴식’의 반복되는 항암치료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데 병실이 없다. 집이 지방이고, 어린 나이라 입원 수속은 마쳤지만 언제 입원할지 기약이 없다.

새벽 5시30분에 자는 딸을 깨워 서울로 출발한다. 주사실에서 12시간 가까이 머무르는데 밥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백혈병 환아들은 조리한 지 2시간이 지나지 않은 무균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도시락도 여의치 않다. 병원 지하 식당은 환자복을 입고는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외래 백혈병 환아들은 빵이나 우유로 요기를 하며 밥을 굶는다. 운이 나쁘면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6시간 넘게 철제 의자에 앉아 가슴 정맥관에 바늘을 꽂고, 링거대를 끌며 시장통 같은 병원 복도를 배회해야 한다. 병상에 한 번 애를 눕히지도 못했는데 치료비는 당일 입·퇴원으로 계산된다. 물론 입원할 수는 있다. 하룻밤에 57만원짜리 1인실은 비어 있다. 병원 관계자는 1인실 입원을 권유하면서 단언했다. “아버님, 서울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치료 시기에 맞춰 곧바로 다인실 병실로 입원하는 사례는 단 1건도 없어요.” 선배 보호자들은 1인실보다 병원 앞 호텔에서 1주일 묵으면서 치료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조언했다.

지난주 외래 치료를 받고 딸아이와 함께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아내가 자막 뉴스를 보고 물었다. “알파고가 뭐야?” 딸아이가 아픈 뒤 아내는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 됐다. 매일 환우 카페에 접속하면서 네이버 메인 화면을 볼 여유는 없었나보다. “아, 컴퓨터랑 사람이랑 바둑을 두는 거구나.” 알파고가 딸아이의 입원할 병실을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아내에겐 한낱 쓸모없는 기계일 뿐이다.

딸은 2년6개월 동안 꾸준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57만원짜리 병실은 입원하지 못하더라도 치료비는 만만치 않다. 예전에 비해 의료복지 제도는 좋아졌다. 나라에서 소아암 환자 가족에게 연간 3000만원까지 치료비를 지원해준다. 단 월평균 가계 소득이 500만4987원(4인 가구 기준) 이하여야 한다. 지난해 맞벌이 근로자 4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538만3062원이다. 집 한칸 없는 평균적인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아내나 나나 15년 동안 꼬박꼬박 세금을 잘 냈는데 정작 나라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너무’ 부자였다. 막연히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인데 그래도 국가가 뭐라도 도와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순진했다.

딸아이가 입원했던 무균병동 1인실에는 중동에서 온 아이가 있었다. 가끔 히잡을 쓴 엄마와 구레나룻이 멋진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만수르 정도의 중동의 갑부 가족인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부자들은 미국으로 치료하러 가고, 여기 온 아이들은 그 나라에서 평범하거나 가난한 축에 속한다고 한다. 수억원에 달하는 치료비와 교통비를 모두 나라에서 무상 지원해준다고 한다. 심지어 보호자 1인 상주 원칙 때문에 병실에 못 들어가는 아빠를 위해 병원 앞 특급호텔 숙박비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에 비해 몇몇 한국 아빠들은 무균병동 앞 소파에 살림을 차리고 산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등 58개 복지 시민단체로 구성된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는 지난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어린이 입원 진료비를 국가가 100% 보장하는 데는 연간 5152억원이 들며 이는 17조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누적 흑자의 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명묵 추진연대 대표는 “소아암 어린이 생명을 모금이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간 5000억원이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22조원이 들어갔지만 2조2000억원의 효과도 보지 못한 4대강 사업 등 수많은 급조 예산 사업보다는 투자 대비 효율은 높을 것이다. 5시간 왕복거리의 외래 치료에 지친 딸아이를 재우고 아내가 말했다. “아이가 아프기 전에는 결혼이나 출산을 망설이는 후배들한테 아이는 축복이라고 빨리 낳으라고 강권하다시피 했는데 이제는 그런 말 하지 않을래.”

항암제를 단 링거대를 끌고 아이와 함께 그나마 조용한 무균병동 앞 소파로 갔다. 한 아빠가 소파에 몸을 구부린 채 자고 있었다. ‘중동에서 온 아빠는 한국의 아빠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나는 중동의 아빠가 부럽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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